솔방울

그거 아시나요?

by 이봄

솔방울 하나 주웠습니다. 제 할 일 마치고 낙엽처럼 떨어진 솔방울이 바람에 뒹굴었습니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에 늦가을이면 솔방울을 채취하러 동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르르 떼로 몰려가며 솔방울을 주웠습니다.

봄날의 농번기에는 부지깽이의 힘이라도 빌린다, 는 말이 있다지만, 고사손 떼로 몰아 월동준비를 한다는 건 웃기는 얘기였습니다. 교실의 난로는 조개탄을 연료로 삼았고, 솔방울은 조개탄에 불을 붙이기 위한 불쏘시개로 필요했습니다. '자력갱생'의 기치 아래 온 국민이 도구화 됐던 시절이라 할까요. 코흘리개 아이들도 산으로, 들로 내몰리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고사리손으로 따고 모으던 솔방울은 솔씨 하나 맺으려면 삼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암꽃의 자주색 꽃눈으로 맺혀 한 해를 보낸다 하고, 이듬해 수꽃의 송화가루를 만나 수분이 되면 우리가 아는 솔방울이 됩니다. 솔방울의 첫해는 녹색의 젊은 구과로 씨앗을 키우고, 다음 해에는 갈색의 솔방울로 변해 솔씨가 여무는 시간입니다. 삼 년의 여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침내 비늘처럼 다물었던 껍질 하나 하나 입을 열어 솔씨를 날립니다.

지난한 사랑의 세월입니다. 봄날 암꽃이 피고, 때를 맞춰 송화가루가 바람으로 날렸습니다. 나비 떼지어 날듯 노란 송화가루는 이리 쓸리고 저리 쏠려가며 나비로 날았습니다. 느닷없는 만남입니다. 봄날의 열병입니다. 그렇게 품에 날아든 사랑은 이 년의 시간동안 성숙해져 마침내 솔씨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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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랬습니다. 낙엽 바람에 뒹굴던 늦가을 생각지도 못했던 그대를 보았습니다. 누군지도, 어디에 사는 지도 몰랐지만 송화가루 바람에 날아들 듯, 당신도 그렇게 노란 꽃물결로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미열에 들뜨고, 때로 뼈마디 쑤시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거죠. 그랬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는다고 조급함에 종종거렸습니다. 어떻게든 당신의 사랑이고 싶어서 뜬 눈으로 밤을새기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소나무 어린꽃 구화가 송화가루를 만나 녹색의 솔방울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당신 사랑합니다' 귀 따갑게 얘기를 하고, 당신도 내게 '나도 당신 사랑해' 말을 합니다. 구화가 녹색의 구과가 됐다 얘기해도 되겠지요. 열병을 앓고 난 뒤 두어 뼘 자란 사랑입니다.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성숙의 시간입니다. 때로 비도 내리고, 뿌리 흔들리게 바람도 불었습니다. 꽃 피는 봄날과 낙엽 지는 가을도 지습니다. 지난 겨울은 또 얼마나 추웠는지 모릅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습니다. 밤 하늘에 별이 뜨듯 이별의 말도 별처럼 떴던도 있었습니다. 술 한 잔 따라놓고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오늘 나는 고백의 말을 이어갑니다.

여전히 나는 첫눈에 반한 그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히려 앓고 난 뒤의 단단함이 있다 할까요. 그대가 더 좋아졌습니다. 비늘껍질 단단하게 다물고서 키워내는 사랑입니다.

오늘 솔방울처럼 단단한 사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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