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리가 피었습니다

희망이라 합니다

by 이봄

바위틈 갈라진 터에 한 뼘의

꽃대가 솟고, 조막만한 이파리들

오무렸던 주먹 보자기로 폈다.

"더는 바라는 것 없어요"

온몸으로 체득한 너는

한 줌의 흙과 빗방울 서넛 툭툭 내리면

다물었던 입 사이로 베시시 웃음 웃었다.

거북손 같은 몸뚱이 바위에 붙어

"사랑합니다"

고백의 말 쏟아내더니 마침내

이름도 곱게 '바위나리'가 되고,

철마다 때마다 아양도 떨었다.


꽃다지 노란꽃과 냉이 하얀꽃,

허리 굽히고야 만나지는 봄꽃이더니,

너 한뼘의 꽃대 삐죽뾰죽 내밀었을 때

비로서 고향땅 이동에도 꽃이 피었다.

매화며 산수유 아직도 곤히 잠자고,

복사꽃에 자두꽃 말해 뭣할까?

생강나무 노란꽃 골골마다 점점이 박혀

봄날의 희롱은 어느 천 년에나 오시려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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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너는 까만 바위에 기대 떼지어 피었다.

차르르 찰랑 소리도 곱게 풍경으로

흔들리던 너로 봄은 시작되었고,

때때로 까만 하늘에 떠도는 별과 같았다.

여름날의 초록은 또 어떻고.

다섯 손가락 활짝 펴고 오시어요,

인사도 곱게 손 흔들어 반겨주었다.

낯선 골짜기 헤매다 만나는 너는

오래된 친구처럼 손을 흔들고,

나는 반가움에 마음 흔들렸지.

단풍나무 으스대며 온산을 불태우는 날,

나도 단풍입니다, 모닥불로 타닥였다.

매캐하게 타는 네가 좋아서

나는 눈물 찔끔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눈이 내렸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자투리 갈라진 틈에

너는 맨몸으로 겨울을 살았다.

기껏해야 바위버섯과 이끼 나부랭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터에 너는

바위나리로, 돌단풍으로 어여뻤지.


나는 네게 무엇이면 좋을까?

나는 천 년 세월 듬직한 바위가 되고,

너는 손금처럼 패인 틈바구니에

송곳으로 뿌리내린 바위나리면 좋을까?

나는 내가 아양떨어 행복한

바위나리면 좋겠다 생각했어.

철마다 옷 갈아입듯 낯빛 바꾸며

널 사랑해 아양을 떨면 좋겠어.

한 줌의 흙과 빗방울 서넛 만으로도

더는 바라는 것 없어요,

베시시 웃고야 마는 내가 좋겠다 합니다.

얼음장 같은 바위에 붙었어도

끝내 새 봄을 여는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희망을 꿈꾸는 바위나리면

행복할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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