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사랑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마주하게 되면 토끼 눈을 하고 놀라게 됩니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순간 콧등에 땀이 솟기도 합니다.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렇게 놀라기도 합니다. 순간의 당황은 그렇습니다. 피에 녹아있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의 발현일지 모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숲의 저쪽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긴장감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등줄기 터럭들 곧추세워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합니다. 그러다가 느닷없는 일을 만나면 극도의 긴장으로 상대를 경계하게 됩니다.
놀람입니다.
낯선 도시에서 신호등의 파란 불 기다리는데 '어머,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반갑게 다가오며 중년의 여인이 인사를 합니다. '아아, 예. 안녕하셨어요? 잘 지내셨죠?' 안부의 말을 물었습니다. 와락 꽃들이 달려드는 날들인데, 이런 우연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해진 일들이 번호표 뽑아든 순서대로만 벌어진다면 얼마나 밋밋한 일상일까 싶었습니다. 봄비 날을 새워 내리는 날에는 머리에 꽃 하나 꽂고서 거리를 뛰면 좀 어때요. 어쩌다 한 번쯤은 그런 일들 섞여들어야 세상이 좀 재밌지요. 며느리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손맛이 결국 MSG였을 때 며느리들의 손이 자유로와 행복하듯 말입니다.
언제 이렇게 돋았을까 궁금하게 머위꽃이 돋았습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른 풀만 업드려 있었습니다. 잠시 집을 떠나 남도를 다녀왔고, 어제는 낯선 길에서 친구를 보았을 뿐입니다. 느닷없는 만남이 기다리던 한 주가 지나고 있습니다. 꽃으로 진 이의 부고가 그랬고, 횡단보도에서의 느닷 없는 만남이 그랬습니다. 오늘 3월의 마지막 날에 머위꽃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반갑습니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은 때때로 반갑지만은 않은 일상이기도 합니다.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오늘이라면 아마도 그것은 더없는 고문일 테니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가끔은 소나기처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마른 뜰에 단비로 찾아들 우연이 반갑고 행복합니다.
그랬습니다.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것으로 마음을 채웠습니다. 채우는 날들입니다. 바라지도 못하던 시간이 느닷 없이 찾아들고, 나는 다시 얼굴에 홍조를 띄고 웃었습니다. 머위꽃 검색하는데 이파리가 머위를 닮아 털머위란 이름을 얻은 노란 꽃의 털머위가 있더군요.
꽃말이 내가 살고 싶은 날들입니다. '다시 찾은 사랑'이랍니다. 없어 고팠을 세월에 단비로 내리는 시간입니다. 다시 찾은 사랑이라니 얼마나 애틋하고 심장 떨릴까요? 정호승의 시집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사랑하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사랑하며 살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벗에게 부탁함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정호승, 시집<사랑하다 죽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