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다

떼로 몰려왔다 떼로 몰려갔다

by 이봄

개구리 몇 마리 자지러지게 울고,

퍼덕이는 수탉의 회치는 소리가

고요를 깨운다.

날은 흐려 밤은 더욱 짙었다.

먹물이라도 한 바가지 끼얹은 듯 무겁고,

나는 어깨를 짓누르는 밤의 무게에

참지 못한 신음을 토해내고야 만다.

개구리 자지러지게 울듯 사람의 말로

가득찼던 마당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재잘거리고 마당 구석의 아궁이는

꽃불로 타닥였다.

연신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꽃불이 타고,

달궈진 구들돌에서는 삼겹살 줄을 맞춰

몸을 뒤척이며 돌아누웠다.


달빛 매달린 산벚나무 달빛의 무게

이기지 못하고 활처럼 휜 밤에

친구녀석들 그리움으로 찾아들고,

부딪히는 술잔으로 어둠은 저만치 달아나 하얗게 지새웠다.

육두문자 적당히 섞어가며 말은 말로

부산스럽고, 취기가 오를 수록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랐다.

봄 밤이 좋았다.

서리서리 접어둔 동지섣달의 긴긴 밤,

굽이굽이 펴듯 봄 밤은 짧고 향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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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서 왔다 몰아서 가면 남는 휑함을

가는 이들은 모른다.

바람이 불듯 순간으로 왔다가

"또 봐, 잘 있어?"

말을 남기고 사라져 가면, 멍울 하나

가슴에 제대로 남는다.

몇 날 며칠을 구멍뚫린 가슴 꿰매느라

나는 몸서리를 치고, 때로는 몸살을 앓는다.

적응되지 않는 몇몇의 말 중에 하나겠지만

이왕이면 골고루 나누어서 왔다가

왔던 순서대로 하나씩 둘씩 빠져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만

늘 그랬다.

떼로 몰려왔다 떼로 몰려갔다.


술잔 기울여 짧기만 했던 봄 밤에는

친구가 있어 행복했고,

제대로 술도 깨지 않은 낮에는

형제들 시끄러워 마음 뿌듯했다.

몽롱하고 아득한 시간은 바람으로 머물다

바람으로 달아났다 해야겠지.

좋아서, 아쉬워서 자다 일어나 회상하게 된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인데도

오래된 추억을 곱씹듯 아득한 이유는 뭘까?

알 수가 없다.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은 사진 한 장의

추억으로 남고, 시간의 조각들 사이 사이로 너에 얼굴 파고듦이 또한 좋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떠오르는 얼굴이

가장 마음에 품은 사람이라던데

나는 얼마나 가슴에 너를 품었을까?

굳이 무게를 젤 이유도 없다.

눈으로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썰물처럼 떠나고 혹여라도 남았을

다녀감의 흔적을 찾는 이 시간에도

가슴 가득 너 떠오르는 것만으로

더는 떠들 이유도 없다.

소풍처럼 두근거리던 봄 날이 갔다.

한동안 가슴에는 바람이 불 것 같다.

종잡지 못할 바람이 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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