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섬에 들어온 지 열흘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기껏해야 열흘을 예상하고 들어온 섬에서 이미 예정했던 시간은 찰나지간으로 흘렀다. 딱히 서둘러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으니 흐르는 시간에 목을 맬 이유도 없다. 섬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월에 들었으니 눈이 호강을 하고, 가슴이 울렁거릴 뿐이다. 연애편지 가방에 몰래 넣어두고서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던 먼 옛날의 봄밤이다. 주체할 수 없는 춘심은 속이 매스껍도록 울렁이고, 지천으로 피고 지는 꽃들은 어쩌면 그리 곱던지 모른다. 발정난 동네 개들이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교미를 하면 내가 왜 그토록 얼굴을 붉혔는지.... 여물지 못한 풋 것의 부끄러움이었겠다.
암컷은 수컷을 유혹하고 수컷은 그 유혹에 천지분간, 사리분별은 이미 개에게 줘버리고 마는 게 살아 숨쉬는 것들의 천성일 터였다. 섬은 주어진 시간에 억 겁을 이어온 천성으로 꾸물거렸다. 갯무는 떼지어 꽃을 피우고 새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울었다. 한 줌도 안되는 몸뚱이 어디서 그런 힘이 솟고, 목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다. 벌레를 잡고 풀씨 몇 알 쪼아먹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울었다. 연미복 빼어입은 제비는 청보리 넘실거리는 수면으로 낮게 날았고, 살이 오른 까치는 뒤뚱거리는 날개짓으로 돌담을 어기적거렸다. 저마다의 앓이다. 앓을 만큼 앓아야 낫는 열병이 작은 섬 가파도를 휩쓸고 이내 본섬을 기웃거린다.
마당을 서성였다. 담배 한 개비 피워물고서 하릴 없이 밤하늘을 보았다. 흰구름 달을 애워싸듯 떠 있고, 보름이 가까웠는지 배부른 반달 곱게도 빛난다. 굳이 가로등 애써 밝히지 않아도 좋을 사월의 밤, 나는 동동 떠다니는 그리움 하나 붙들어 달빛에 앉았다. 오늘이어야만 하는 것들이 때를 다퉈 시끄러운 섬에서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얼굴 살며시 밀어냈다. 마음이야 천 리인 들 닿지 못할까 마는 땅에 뿌리내린 몸뚱이야 어이 두고 떠날까. 다만 너, 저리 고운 달빛 창에 어리면 날 보듯 볼까 싶어 한참을 바라봤다. 종일 울고 날던 새들 어느 숲, 어느 나뭇가지에 잠들었는지. 새들 잠든 섬, 달빛 파도로 부서지는 바다에서 자맥질로 뻐근하게 물장구를 친다. 그리움 테왁처럼 떠다니는 바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