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야만 잘 보이는 것들

가끔은 그래도 좋다

by 이봄

안경을 자주 잃어버렸다.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고르고 제법 되는 가격을 치루곤 했는데 반복되는 안경의 분실로 인해 그만 두었다. 맘에 드는 안경테가 아니라 쓸만한 테를 고르는 거다. 어차피 얼마나 쓰겠다고 그 돈을 쓰겠냐 하는 마음이 앞선다. 특별히 건망증이 심해서 안경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다. 쓰고 벗고를 반복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

가까운 곳을 봐야 하면 안경을 벗어야 하고, 먼 곳을 봐야하는 경우엔 오히려 안경을 써야만 한다. 노안과 시력의 저하가 불러오는 참사다. 마흔을 넘기면서부터 시작된 안경분실이다. 책을 읽는다거나 휴대폰을 본다던가 하는 경우엔 쓰고 있는 안경은 오히려 방해가 되니 벗어야만 하고, 멀리서 오는 그대를 확인하려면 안경을 써야만 한다. 그래서 끼고 벗기를 반복한다. 먼 곳의 당신은 안경의 힘을 빌려야 하고, 앞에 앉은 당신은 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못하게 오롯이 내 눈으로만 본다. 덧칠되는 색도 없고, 예단된 생각도 없이 그저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그대를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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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야만 보이는 것이 있고 허리를 숙여야만 만져지는 것들이 있다. 멀리 보아야만 세상을 관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가던 길 멈추고 뒤를 돌아봤을 때 만나게 되는 석양이 있고, 구름 낀 산봉우리에선 구름바다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늘 같은 얼굴일 수도 없고, 결승선을 향한 경주마의 질주가 아닌 다음에야 무작정 앞으로 돌진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았다가도 이내 빗방울로 부서지는 게 자연스럽다.

오늘은 안경을 벗고 가까이 있는 너를 본다. 천천히 더듬다가 두 눈을 감고 고동치는 심장박동에 집중도 하고, 더듬이 곧추세워 어림짐작 너를 그리기도 한다. 얼추 느껴지는 것도 너일 테고, 윤곽 또렷히 보이는 너도 너일 터다. 이틀을 무섭게 내리던 비가 물러나고, 산 마다 골짜기 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떼지어 산을 기어오른다. 마치 푸른 초원을 몰려가는 양떼처럼 몽글몽글 초록에 구름으로 떠돌았다.

안경을 벗고,조여맸던 운동화도 벗어버리고 보는 세상은 스스로 꾸물거렸다.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멀어지며 꾸물거렸다. 그저 바라봄이 좋아 굳이 안경을 끼고서 멀고 또렷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흐릿해도 좋았고 소리는 작아 바람이 울듯 웅웅거려도 좋다. 쫑긋 귀를 세워야할 이유도 없다. 들어도 그만 못 들어도 그만 바람이라 우기면 그만이다. 오늘은 그저 벗은 안경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웃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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