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꽃이 피었다

사랑이 궁금하다

by 이봄

길가에 늘어선 아까시나무가 꽃을 피웠다. 하얀 꽃송이 주렁주렁 팝콘처럼 터지면 마을은 향긋하게 취했다. 오목하게 산들이 애워싼 마을은 꽃이 피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렇게 말라 떨어질 때까지 달큰한 향기에 젖어있었다. 종일 산과 들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한 주먹 꽃을 따서 먹었고, 벌들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바삐 꿀샘을 찾았다. 마르지 않을 것처럼 꿀이 솟았고 숲은 벌들의 날개짓으로 바람이 일었다. 붕붕 웅웅 바람이 소리로 울고, 소리가 쏟아지는 폭포 사이를 벌들은 용케도 비집고 날아다녔다. 마치 외줄타기로 가슴을 쓸어내리듯 곡예의 아슬함이 있었다고 할까. 벌들의 비행은 심장을 뛰게 했다.

꽃이 필 때면 너른 논에선 사람들 줄을 지어 모를 심었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왼손에는 한웅큼의 모를 쥐고서 연신 오른손으로 밀어내어 모를 심었다. 노동의 고단함은 부러질 듯 휘어진 허리에 고스란히 쌓였다. '에구구 에구' 신음소리가 잇사이로 새어나올 때쯤 논두렁엔 넉넉하게 막걸리가 돌고, 얼굴 벌겋게 달아오를라 치면 그만큼 걸쭉한 농담이 오갔다. 젖비린내 겨우 벗은 총각은 낯 부끄러워 마시는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가늠하지 못했다. 걸쭉한 웃음이 들판을 기어다녔다. 아까시꽃이 피고 찔레꽃이 필 때면 마을은 이래 저래 취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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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숨 넘어가게 웃던 계집애들은 아까시 잎줄기 뜯어다가 머리를 따고 묶어 한껏 멋내기에 빠졌고, 수염 거뭇하게 나기 시작한 사내녀석들은 이파리 하나씩 떼어내며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기에 바빴다.

"다시 한 번 해봐? 순이랑 너랑 잘 될지 또 알아?"

옆에서 부추기면 못이기는 척 아까시 잎줄기 뜯어다가 하나 하나 잎을 떼어내면서 중얼거렸다.

좋아한다 안 한다, 좋아한다 안 한다....

"에이, 순이랑은 아닌가봐. 하하하"

부끄러운 사내녀석은 겸연쩍게 웃음을 흘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었다.

예나 지금이나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사내녀석은 귀밑머리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벌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날개짓이 바쁘고, 꽃에선 여전히 꿀이 솟았다. 들판 가득 늘어섰던 사람들은 바람으로 사라지고, 이양기 하나 탈탈탈 소리를 내며 오고 간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들에는 하릴없는 꽃바람 불고, 나는 먼 날의 기억을 불러다가 이파리 하나 다시 뜯었다.

"은경이는 나를 사랑한다. 안 한다. 사랑한다. 안 한다. 사랑한다...."

순이는 어디서 잘 사는지? 궁금하다만 오늘은 오늘의 그가 궁금하다. 이파리 뜯어가며 얼굴 붉히던 마음은 오늘도 다르지 않아서 심장이 요동쳤다.

"사랑한다. 안 한다. 사랑한다...."

한 잎 한 잎 뜯는 마음은 설레고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봄날의 아까시꽃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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