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발톱꽃

사납지 않은 말들이 꽃으로 피었으면 좋겠다

by 이봄

나이배기 몽순이와 몽순이의 새끼 깜시가 하릴없이 뛰놀고, 이웃집 총각녀석이 데려온 점박이 달마시안이 덩달아 촐싹거리는 마당의 경계에 꽃이 피고 풀이 자란다. 볏이 탐스런 수탉 한 마리 무슨 재미로 땅을 파는지 발놀림이 분주하고, 높다란 은행나무 꼭대기엔 까치녀석 까악 깍 운다. 곤드레 만드레 취해도 좋다는 곤드레는 손바닥만한 잎사귀 너풀거려 푸르고, 허리 잘린 참취는 곁가지 움을 틔우려 애를 쓴다. 저마다 알아서 바쁜 시간이 마당에서 졸고, 사람들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분주하게 길을 오간다. 달려가는 차마다 차곡차곡 삼겹살에 목살 얼음찜질 받을 테고, 아삭아삭 씹는 맛에 상추며 쌈채소들 줄을 맞춰 누웠을 터다.

노는 날의 풍경은 언제부턴가 교외로 차를 몰아 너른 캠핑장에 의자 하나 펼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비록 부처님 오셔서 맞는 휴일일 지라도 골짜기마다 고기굽는 연기 피어날 테고, 아이들은 너른 마당 뛰어다니며 합장을 할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새우는 모로 눕고, 바로 눕고, 굽은 허리마저 곧게 펴려고 안달을 떤다. 눈치 볼 것도 없고 저마다의 자유로 세상을 만끽하면 그만이다. 길가에 늘어선 아까시나무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덤불 무성한 산자락엔 찔레꽃 꽃무덤으로 피면 봄이 여문다. 눈치 보아가며 여무는 계절이 아니니 그 품에 안긴 너도, 나도 자유로이 여물면 그만이다.

현관문 시멘트 댓돌 앞에 무리지어 꽃이 폈다. 꽃들은 고개숙여 얼굴 붉히고, 뒤통수엔 더벅머리 바람에 날리듯 발톱 몇 개 오무리고 있다. 어쩌면 오래 전에도 머털도사를 알 수 있다면 머털꽃이라고 이름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발톱은 다섯, 떡진 떡거머리 사내녀석의 뒤통수를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꽃 하나 얌전히 들여다보면 매의 발톱을 닮은 게 맞겠다만 떼지어 피고 일제히 머리숙인 녀석들은 어쩐지 떡진 더벅머리를 닮았다. 매발톱 꽃이다. 자주색 꽃자루는 하늘을 향해 발톱을 오무리고 정작 꽃은 노랗게 고개를 숙여서 얼굴을 보기 어려운 꽃이다. 다소곳을 넘어 부끄럼에 얼굴을 숨겼다. 바람이 일렁여야 언뜻 보게 되는 게 고작이다.

굳이 고개를 들어 나를 봐라 얘기하지 않으련다. 채근한다고 숙인 고개 쳐들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본들 뭣 할까? 다만 앙다문 입술처럼 오무린 발톱이 너의 가슴 후벼파는 일 없기만을 빌 뿐이다. 부끄러움이 지나쳐 스스로를 할퀴는 우울은 없었으면 좋겠다. 너는 충분히 어여쁘고 자나치듯 보던 나도 네 얼굴 보고 싶어 무릎을 접었는 걸. 고슴도치의 가시도 그렇고, 복어의 가시도 그렇다. 누군가의 심장을 향해 곧추세운 창검이 아닌 걸 안다. 오히려 여린 가슴, 여린 몸뚱이 지키려는 가시임을 모르지 않는데 너의 발톱이야 말해 뭣할까? 사납고 무서울까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잔뜩 오무린 발톱임에야. 그래, 이왕지사 피고 지는 너는 꽃이고, 이름이야 어떻든 넌 발톱 오무리고 고개숙여 부끄럼 많은 꽃이거늘. 귀하고 예쁜 그래서 향기로운 봄꽃임을 잊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스스로 할퀴는 바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너를 보며 생각한다. 사납지 않은 말들이 꽃으로 피고, 피어난 말들이 달큰한 사랑으로 열매 맺기를 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세상은 생각보다 예쁘고, 사는 날들은 생각보다 행복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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