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궁금증 하나 남았다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던가 아니면 새해맞이로 들뜬 12월의 마지막 자정이 주는 설렘도, 아쉬움도, 없다지만 오늘은 5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정확히 말하자면 그대의 아침인사에 눈을 떴을 때 하늘은 흐리고 섬엔 온통 안개 가득했었지. 바람은 때로 안개를 모으고 흩어놓기를 반복하다가 사라졌다. 바닷바람은 살랑살랑 잔잔해서 파도는 아기처럼 쌔근거렸고....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평온해서 고요하고, 출근이다 등교다 하는 분주함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간혹 바닷일 나가는 어부의 경운기가 탈탈탈 정적을 깨며 달려갈 뿐이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터였다. 부지런한 꼬맹이 좁은 골목을 걸어가며 재잘거리며 지나치면 그만이다. 전교생이 고작 열넷. 선생님은 멀리서 아이에게 손짓을 하고 부끄럼쟁이 꼬마녀석 겨우 고개를 숙인다. 터덜터털 아침은 늘 대야 속 파문처럼 잔잔하지.
커피 한 잔을 내려 미처 떨쳐내지 못한 잠을 쫓고서 떠난다는 5월을 더듬어 보았다. 청보리 넘실거리던 섬엔 사람들 물고기처럼 몰려들어 떼로 몰려다녔다. 짊어진 배낭마다 호호깔깔 웃음을 잔뜩 매달고서 보리밭 사잇길 마다 담뿍 이야기를 쏟고, 꽃을 피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보리는 날마다 익어 황금들판 햇살에 반짝거렸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훔쳐내며 나는 그림을 그렸다. 때때로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달라붙어 붓을 놀리다가 멀찌감치 물러나 확인을 하기도 했고. 벽면 가득 말을 그리고 꽃을 피우며 고백을 했다.
"은경아, 당신 사랑해!"
사진 찍기에 바쁜 중년의 여인들 입을 모아 한 마디씩 중얼거렸지.
"은경이는 누구야? 좋겠다. 이렇게 예쁜 고백도 받고. 얼마나 좋을까?"
옆에서 지켜보며 난 그냥 씨익 웃었다.
오늘 문득 궁금했다. 그 많은 관광객 중에 은경이가 왔다 갔을까? 물론 내 고백 속의 은경이는 아닐지라도 어디선가 예쁠 또다른 은경이가 한명이라도 다녀갔을까 궁금했다. 말이 꽃으로 어여뻤으면 했던 5월이 지나간다. 싱거운 궁금증 하나 남겨놓고서 지나간다.
5월의 좋았던 날과 좋았던 일들 불러다가 고맙다 안아주면서 손도 한 번 꼭 쥐어본다. 6월의 어디쯤에 다시 불러놓고 5월의 그날처럼 행복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은경이도 찾아와
"어머, 나야! 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네. 어쩜 좋아 ㅎㅎ"
행복해 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