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이요

새콤달달 사랑이에요

by 이봄

새벽부터 이어진 빗소리에 눈을 떴어. 시간은 새벽 여섯 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밤이고 새벽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지만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새벽을 관통해서 아침이란 시간대에 접어들었을 거야. 그러니까 비내리는 가파도의 이른 아침을 맞이한 거지.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마당을 쓸고 가는 빗물에 잠도 달아나버려서 폰에 저장된 사진을 들춰봤어. 꿀벌과 커피나무 한 그루 짧은 처마에 기대 졸고 있었어. 요 며칠 햇살은 한여름의 그것처럼 사나워서 슬리퍼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붉게 태우고 말았지. 태운 정도가 아니라 화상을 입혔어. 며칠이고 시간이 자나면 발가락 피부는 허옇게 일어나 벗겨지고 말 거야. 그 따가운 햇살을 머리에 이고 그림을 그렸지. 끝내야 하는 벽이니 햇살을 핑계삼아 노닥거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챙 넓은 모자 방패로 내세우고 손바닥만한 그림자에 얼굴이며 몸뚱이 구겨넣고서 작업을 했지. 별거 아닌 그림이지만 그래도 이야기 하나쯤 만들고 싶었어. 한 장면의 벽화지만 동화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거야.

이야기는 이랬지. 숲에 어느 날 커피콩 하나가 떨어져 싹을 틔우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어. 커피나무는 튼실하게 자란만큼 향기로운 커피콩을 주렁주렁 많이도 키워냈지. 그때부터 꿀벌들은 꿀을 버리고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어. 꿀벌들의 비행은 날마다 꽃밭을 지나쳐서 커피나무를 향했던 거야. 가파도 작은 커피숍은 꿀을 포기하고 찾아든 꿀벌들의 비행으로 소란스러웠다는 뭐 그런 대충의 얘기지.

그러다가 알게 됐어. 꿀을 포기한 꿀벌을 그리다가 진지함을 밀쳐내고서 유치함에 빠져있는 사내를 발견한 거야. 농담이라고 건내는 말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나 어울리던 사내가 발그레 얼굴 붉히며 실없이 웃고 있었어. 날아가는 참새 거시기라도 본듯이 실실거리기도 했지. 어쩌면 손은 붓을 들고 있었지만 마음은 콩밭 어디쯤을 뛰어다니고 있었겠지. 곁에서 지켜보니 그랬어. 그림을 그리는 내내 사내의 마음은 분명 이랬을 거야.

뙤약볕에서 꿀벌들과 씨름을 하면서도 내 마음엔 너 동동 떠다녔어. 살랑거리는 바람에 치맛자락 나풀거리며 당산역 계단을 내려오던 너가 있었고, 커피숍 의자에 기대어 웃어주던 너도 있었지. 바람 매섭던 겨울, 오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하게 바라보던 너의 눈이 예뻤고, 배고프겠다며 챙겨오던 샌드위치며 삶은 달걀 하나도 있었어.

달아오른 골목의 열기로 땀방울 이마에 맺힐 때쯤이면 넌 너른 품 벌려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됐어. 가지마다 이파리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푸른 그림자 햇살을 가리웠지. 생각만으로 웃음짓게 하는 그래서 늘 힘이 되는 사람이야.

꿀벌 한 마리 사진 찍어 보내면

"어쩜 좋아, 너무 귀여워. 널 닮아서 벌도 이렇게 귀엽나봐 ㅋㅋ"

호들갑스럽게 칭찬도 했지. 그런 너의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고 행복을 주는지 너는 알까?

어슴프레 짐작이야 하겠지만 아마 다는 모를 거야.

오늘도 '잘 잤니?' 안부를 묻고, 우리 오늘 하루 열심히 살자 응원의 말 아끼지 않는 널 보면서 난 고백을 했어.

귀에 딱쟁이 앉겠다 핀잔어린 말을 하기도 한다만 너와 나 행복한 말인 걸 알아.

"은경아, 사랑해! 그것도 많이 사랑해..."

그런 거 같아. 귀밑머리 하얗게 새었는데도 애들마냥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사진을 찍었어. 초점이 흔들릴까 숨도 멈춰가면서 찰칵 소리도 정겹게 찍었지. 아, 그보다도 먼저 햇볕과 씨름하면서 그림에다 몰래 고백의 말을 그려넣었지. 너랑 나만 한 눈에 알아볼 숨은 그림이야. 유치해져도 마냥 행복해서 유치한 줄도 모르는 마음.

I ♡ EK

유치해서 행복한 내 마음이야. 오늘도 너 떠올리며 함박웃음 웃어. '잘 잤니?' 물어주는 너의 안부에 세상을 다 얻은 나야.

"사랑해, 은경아! 그것도 아주 많이, 많이.....♡"


사내의 고백은 이어지고, '유치해서 오히려 행복해!' 주절주절 말들은 봇물처럼 터질지도 모르겠어. 하긴 뭐 어때? 자기가 행복하다는데 굳이 딴지를 걸 이유는 없겠지. 그래, 너 행복하다니 보는 나도 좋다, 하면 그만인 거야. 그래, 그러면 그만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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