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하는 용은 신화일 뿐이다
점 하나 찍었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널부러진 컵이며 붓을 줍고 씻었다. 손바닥에 덕지덕지 묻은 폐인트도 신나를 뭍혀가며 꼼꼼이 지웠다. 더는 필요 없는 것들 줄을 세워 묶어두고 그동안 열어두었던 마음도 빗장을 채웠다. 철부지 동심을 꿈꿨다. 머리는 늙고 가슴은 굳어서 까르르 자지러지는 동심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열 수 있는 만큼 가슴을 열어 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어 놀고 싶었다. 고무줄 하나에 날이 어둡도록 폴짝이던 계집애여도 좋았고, 구불구불 선을 그려놓고 막고 뛰던 사내녀석이여도 좋았다. 두어 장면의 그림에 천진난만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걱정도 없고 고민도 없어서 눈은 하늘을 닮고, 가슴엔 별 총총 반짝이는 아이들을 그리고 싶었다. 마음은 그랬다. 언제나 결과는 엉뚱한 것으로 나타나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점 하나 찍었다. 끝이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마지막 붓놀림에 점 하나를 찍었다. 그림 속 용의 눈을 그렸더니 용이 살아나 승천을 했다는 화룡점정의 신화는 결국 신화로 그쳤다.거피나무 마지막 이파리에 초록점 찍으면 향기로운 커피꽃 하나쯤 피울까도 싶었고, 청바지 입은 하마는 눈동자를 그려넣는 순간 둔탁한 몸짓으로 초원을 질주할 줄 알았는데 모두 요지부동 꿈쩍도 않는다. 점은 점이었으되 같은 점이 아니었나보다.
하긴 그렇지 않은가? 같은 얼굴에 그것도 같은 입술 위에 점이 있다고 해도 마릴린 먼로의 점은 뭍 사내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이웃한 소녀의 검은 점은 단지 점순이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먼로은 점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도 아닌데 결과는 극과 극을 달리고야 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쯤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그나마 용두사미 흐지부지 결말없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겨야 하겠지. 종지부를 찍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용트림도 없고 커피꽃 향기롭지도 않았지만 또 어떠랴. 점순이는 점으로 해서 잊히지 않는 이름을 얻었듯 나는 다음으로 넘어갈 기회를 얻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제자리걸음으로 머무르지는 않아도 되니까 그것으로 족하다. 하긴, 최악의 순간은 면한 점이었구나. '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는 이별의 점도 있으니 말이다. 죽자 살자 끌어안고 뒹굴던 님도 점 하나 잘못 찍으면 남이 된다는데야 그보다 슬픈 점이 또 있을까? 그래, 맞다. 오늘도 난 마지막 점으로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이제야 끝났네. 참 오래 걸렸지?' 문자를 보냈을 때, '응, 고생했네. 날도 더운데 고생 많았지? 그래도 보기에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ㅎㅎ' 반겨주는 너가 있었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반겨주고 같이 기뻐할 니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점 하나 찍어 행복하게 마무리를 했다.
"점순아, 너 들먹여서 미안해!"
점순이도 이해하리라 우기면서 점. 점. 점. 이야기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