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꽝나무
요란도 하여라 그대!, 하고 말하게 되는 나무를 만났습니다. 5월 하얗고 작은 꽃, 무더기로 피우더니 동글동글 매끄러운 열매 많이도 맺었지요. 나뭇잎은 해풍을 이기려고 앞이고, 뒤고 뻣뻣한 철갑으로 중무장을 한 나무라서 보드랍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는 녀석입니다. 물론 녀석은 키를 키우기 보다는 품을 키우는 녀석이기도 하지요. 모두 바람 때문입니다. 거친 바닷바람을 이겨내려면 납작 엎드리고, 살갗은 뻣뻣하고 단단하게 준비를 해야만 했었겠죠. 그래서 그런지 녀석을 땔나무로 쓸 때 녀석의 거칠었던 삶이 마지막 몸짓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궁이에서 타닥이며 타던 녀석은 순간 꽝꽝 요란한 소리로 터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자빠진다고 해서 이름이 꽝꽝나무라고 하더군요. 온몸으로 살아온 이력이 고스란히 밴 이름입니다.
이름만 요란하지 실제로 마주하는 녀석은 곱상한 체구에 초록이 반짝이는 제법 예쁜 나무입니다. 꽃이야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만큼은 마당을 덮고도 남았습니다. 투박하고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 적잖이 싫었을 녀석입니다. 이름하면 나도 그랬습니다. 이래춘, 어쩐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입니다. 계집애처럼 뭔 놈의 '춘'자를 넣어 이름을 지었는지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음력 2월 그믐에 태어났으니 내일이면 봄이 온다고 해서 '來春'이랍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릅니다. 볼 맨 소리로 투덜거리던 이름이었으니 꽝꽝나무의 심정이야 누구 보다 더 이해하고도 남지요. 억울하고, 속상하고, 밉기도 하겠지만 어쩌겠어요. 모두들 꽝꽝나무라고 부르는 걸요.
하나의 이름으로 글을 이어온지 벌써 일흔 번째가 됩니다. '당신을 향한 고백'이라 이름을 붙이고 주절주절 이어온 글이 벌써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칠십을 맞는다는 게 예전에는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古稀'연을 성대하게 치루기도 했었지요. 오늘도 짧은 글 하나 쓰려다 보니 70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들이야 그런지, 어쩐지도 모를 일이지만 제겐 특별한 숫자입니다. 이야기의 반은 다짐 같은 얘기였고, 나머지 반은 실제이기도 한 얘기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말과 가슴에서 솟구치는 '당신 사랑합니다!'하는 말이 뒤섞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종거리는 이야기였죠. 그런 말들이 좋아서 많은 말들을 이어왔구나 싶었습니다.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표현하며 살자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굳이 말을 해야만 알겠어? 다 그 마음이 그 마음인데...'하는 말이 얼마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말인지 얘기하는 마음도 많았지요. 꽝꽝나무, 아궁이에서 타오르다 소스라치게 터져나오는 그 소리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아온 이력 서슴없이 토해내는 거 같아서 좋았습니다. 꽝꽝 터지는 그 소리가
"있잖아, 난 니가 정말 좋아!"
용기내어 표현하는 사랑고백처럼 들리는 것만 같아서 좋았습니다.
일흔 번째 글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꽝꽝나무처럼 '난 당신한테 사랑의 도장 꽝꽝 찍었어!'하는 말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말은 새날에 걸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테지만 오늘은 뻣뻣한 이파리 철갑으로 두른 꽝꽝나무가 요란스레 고백을 합니다.
꽝꽝나무, 바닷바람 온몸으로 이겨내고서 얻은 그 이름에 당당하듯 촌스러운 내 이름에도 봄이 왔다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내겐 봄입니다. 오늘도 고백합니다.
"은경아, 당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