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가득한 섬

그대 더욱 그리운 시간

by 이봄

바람이 점령해버린 섬에 앉아서

당신을 떠올려.

요 며칠 섬은 바람에 휩싸여 가뜩이나

낮은 등 깊게 조아리고서 쥐 죽은 듯

엎드려 고요해.

고요하다는 말이 좀 그렇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어느 때보다도 더

섬은 시끄럽고 사나웠거든.

바람에 나뒹구는 파라솔을 접으니

쇠파이프 밤을 새워 피리를 불고,

놀란 고양이들은 윗집 아랫집

담을 넘나들며 밤이 새도록

야옹야옹 울었어.

단지, 고요하다는 말은 그러니까 인적이 끊겨

오가는 이가 없다는 말이고,

그래서 조용하다는 말에 지나지 않네.

물 설고 낯 설은 타지에 머문다는 건

배타적인 자연과 데면 데면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나름의 적응과 뭇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싶기도 하지.

마음에 단단한 기둥 하나 튼실하게 세우고서

그래? 어디 해보자!, 하는

오기도 한 번은 품어야 하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내기라도 하자 달려드는 독기도 세워야 하지.

온 몸 밤송이처럼 가시를 곧추세우고서

볼따구니 가득 바람도 채워

볼썽사나운 표정이라도 짓는다면 그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겠다 싶기도 해.

오늘은 성난 바람이 점령한 마당에 앉아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에 까치복처럼

가시돋힌 물결을 봤어.

뭍 것들 기죽이는 바람이고 파도야.

그렇지만 어디 쉽게 무릎이라도 꿇을까.

촌놈의 깡으로 적응해 가는 섬인데

눈부시게 파란 하늘은 정수리에서 빛나는데

배는 뜨지 못하는 날이라니.

육지 것의 눈에는 생경하고 놀랍기도 하.

들이 육지들 한다더니

나는 육지이라서 더 당황스럽기도 하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건

파란 하늘을 내어준다는 거겠지.

날마저 궂어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웠다면 얼마나 더 심란하겠어.

하릴 없는 시간이 무료했을까?

술 한 잔이 간절한데 카페에는 맥주만 몇 종

바다를 건너왔다 으스대길레

나는 납작 엎드린 억새 사이를 걸어서

소주 서너 병 사려고 상동을 다녀왔지.

돌아오는 길엔 룰루랄라 콧래도 흥얼거리면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채 귓

전을 빠져나기도 전에

니가 그리운 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립지 않은 날이야 없다하더라도

아,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당신이 더 그립네.

보고 싶다는 말 꺼내어 들면 더욱

보고 싶을 것 같아서 우물쭈물

고이는 침에 꿀꺽 삼키려고 했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결국은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삼키지 못하고 이렇게 말을 꺼내게 되네.

"은경아, 니가 보고 싶다. 정말..."

바람은 어찌 이리도 무심히 부는지,

하늘은 또 배 끊긴 바다와 어울리지도 않게

어찌나 푸르고 푸른지.

섬이란 놈은 알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섬에 앉아서 오늘도 너에게

나는 고백을 해.

꾸역꾸역 삼키려고 했던 말이야.

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난장을 칠 게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차마 삼키지 못했어.

어쩌겠어. 뱉어낸 말들이 밤을 몰아내고

벌겋게 충혈된 새벽을 강요한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그게 오히려 요동치는 심장에 떳떳한 몸짓일 거야.


"은경아, 사랑해! 난 니가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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