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숨은 속살은 더 없이 부드러울지도 몰라

by 이봄

밭과 밭, 밭과 무덤의 경계를 짓는 검은 돌담을 산담이라 하더이다. 구멍 숭숭 현무암을 낮게 두른 무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주도를 이야기하고, 바닷가에 접한 높다란 돌담은 또 얼마나 수고스러웠을까 가던 길 멈추게도 된다. 경계가 되었든 아니면 방풍의 목적이 되었든 제주의 돌담은 이미 풍경을 넘어 문화가 되었다. 그 산담을 끼고 억새며 갯무 지천으로 자라나고, 잎새마다 뾰족뾰족 가시로 무장한 자주빛 꽃 엉겅퀴 곱게도 피었다. 경계에서 자라는 녀석들이라 보는 시각에 따라 예쁘기도 하겠고, 때로는 무성하게 수풀을 이루니 꼴사나운 잡초로 홀대 받을 수도 있겠지. 아침, 섬을 어슬렁거리다 만난 엉겅퀴가 예뻐서 날 세운 가시 피해가며 가지 하나 잘랐다. 그리고는 이파리에 묻은 먼지 물로 씻어내고 호흡도 참아가며 사진 한 장 찰칵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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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하고 예쁜 그러면서도 당당한 녀석을 찍고 싶었다. 어제도 그렇고 그제도 나는 꽃을 찍어 이야기를 썼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라도 나는 꽃이 좋다. 바라봄이 행복하고, 향기에 취하는 그런 게 좋아서 나는 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한참을 산담의 경계에 기대 꽃피운 녀석과 씨름을 할 때 너는 기억에도 없는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엉겅퀴 예쁜 사진에 이러쿵 저러쿵 변명의 말 끄적인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시간이 꽤나 지난 사진이었다만 보는 순간 심장은 쿵 내려 앉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 됐다. 지나온 우리들 시간이 오롯이 담긴 사진이라서 그랬던 거 같고, 너와의 첫 만남이 거기에 있었는데 그만큼의 낯 부끄러운 실수도 있었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고, 한 마디로 웃기는 일이었어. 그러니 사진에서 처럼 나는 이래서 그랬나봐!, 변명을 늘어놓게 되고.... 아, 생각할 수록 난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싶기도 해. 그나마 그대의 바다와도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의 말들 쏟을 수 있는 거겠지. 참으로 고맙고 행복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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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산담이 있고,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산담으로 자리를 하는 오늘인데, 오늘도 어쩐지 엉겅퀴 자주색 꽃을 지나치지 못했다. 만지작 만지작 그러고 있을 때 너는 기억에도 없던 엉겅퀴 하나 내게 보냈다. 통한다는 게 이런 거겠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교감하는 무엇이 너랑은 있어서 좋아. 그렇다고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내 맘 알지?, 하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아.

호히려 지난 가을의 그 사진을 지금까지 갖고 있는 너에게 감동을 하는 나야. 정말 행복한 추억 걷기야. 뭐라 얘기할 수가 없네. 너와의 시간은 이렇게 추억이 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행복이 있는 거 같아. 산담을 따라 곱게 핀 엉겅퀴가 오늘처럼 보드라울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야.

여기와 저기를 구분짓는 그 어디쯤에서 우리 만나 얼싸안고 춤이라도 걸판지게 췄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야. 얼마나 좋은지. 다시 들춰내도 너는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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