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매듭 하나

향기롭기를 바라며 묶다

by 이봄

매듭 하나 지을 때마다 몸살을 앓듯 인생도 홍역을 치뤘다. 몸서리치게 아팠던 매듭이 있는가 하면 복에 겨워 행복했던 매듭도 있었다. 어떤 매듭이든 그것이 좋았든 싫었든 간에 한 번 결박한 매듭은 풀리지 않게 묶었어야 했는데 세월의 오래됨을 틈타 헐거워지고 만다. 헐겁고 느슨해진 매듭은 끝내 풀어져서 되풀이 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난 것들은 다만 추억으로 삼으면 그만이라서 되풀이 되는 꼴이 싫다고 해야하나?

풀리지 않을 매듭 하나 묶어야할 시간이다. 그렇다고 너무 매몰차서 다시는 추억조차 버거운 매듭이라면 그것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성장의 자리마다 단단한 마디 하나씩 세워 오히려 하늘가에 출렁이는 대나무처럼 스스로의 지지대나 계단 같은 매듭이었으면 좋겠다. 철옹성처럼 단단한 마디 세웠었도 그 마디마다 양분이 흐르고 물이 넘나들어 성장하는 대나무 매듭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성장통이라면 얼마든지 웃으며 앓을 수 있다.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도 있지만 꼭 아파야만 청춘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삶의 숱한 몸짓과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이 어디 다 좋을 수만 있을까? 아픈 마디 하나쯤 따라올 수밖에 없다. 청춘의 열정으로 까짓 아픈 마디 서넛쯤이야 감기처럼 털어내면 그만이다. 그래서 청춘이다, 라고 말하면 좋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오늘 청춘의 매듭을 얘기하기엔 워낙 멀리 흘러가버린 세월이고, 고뿔에도 삼칠 일 누워 골골거릴 세월이라서 몸살로 앓게 되는 매듭은 더는 묶고 싶지 않았다. 묶인 매듭에 갇혀 어후적거릴 게 뻔한데 굳이 자초해서 가뜩이나 질박한 인생에 매듭 하나를 더하고 싶었을까 말이다. 산다는 건 원치 않는 일들이 더 친한 척 아양을 떠는 거라서 결국은 마른 몸뚱이에 매듭 하나를 지어야 한다. 결박처럼 단단하게 지을 일이다. 더는 헐거워 반복되지 않기를 소원할 뿐이다.

위에 사진은 기억에서 잊혀졌던 글의 표지같은 사진이다. 그때도 자괴감에 몇 자의 글씨를 쓰고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도 다르지 않으니 매듭은 헐거워 풀리고, 계절의 순환처럼 나는 반복되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꼬락서니다.

지난 글들을 훓어보다가 완성되지 못하고 서랍 깊숙히 버려진 글 하나를 만났다. 짧은 몇 줄의 문장을 쓰다가 멈춘 글이다. 왜?마무리하지 못하고 서랍에 넣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세세한 일들은 기억에 없다. 다만,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때라서 누가 '같이 일 좀 할래요?' 그랬던 시절이다. 그러면 늘 '아, 예. 그러죠? 담뱃값이라도 벌어야죠!' 했는데 웃기는 건 정말 담뱃값을 주더라는 거였다. 담배를 트럭으로 사다 쟁여놓고 피울 것도 아닌데 담뱃값이라니...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살았어!'하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한심함이 거기에 있었구나 하게 된다. 하필, 오늘에 지난 글조차 저런 글이 눈에 띄는지 모르겠다. 중언부언 구구절절 얘기는 구차하다. 매듭짓기를 강요하니 매듭을 지어야겠지. 풀매듭처럼 꽃 피고 향기 분분할 일 없으니 다만 결박짓는 매듭이 쓰리고 아플 뿐이다. 아니, 창피하다 얘기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어찌 이렇게 설렁설렁 살았는지 모른다. 야물지 못하니 틈마다 가시가 침범하고 뚫린 지붕으로 비 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구를 탓하랴! 야물지 못한 원죄가 내게 있음이다.

하늘은 말갛게 개어 푸르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두둥실 어여쁜데 섬엔 바람이 날뛴다. 고삐 풀린 망아지 한 마리 온 섬을 헤집듯 바람이 분다. 온갖 고개를 쳐든 것들 허리가 부러져라 흔들리고, 마라도 사이의 바다는 허연 이빨을 들어내고 험하게 울부짖는다. 높다란 하늘은 고요해서 구름들 서로 기대어 까박까박 졸고 있는데 수면을 스치는 바람은 어찌도 이리 야속한지 모르겠다.

제발 오늘까지만 불어라! 내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고 고요하길 두 손 모아 빌게 된다. 석 달의 인연 짧거나 서운한 것 없다. 나는 네가 좋아 오래토록 어화둥둥 춤이나 추며 살고 싶었다. 반주 삼은 술 한잔에 취해 네 품에 안겨 잠들기를 몇몇 밤인지, 낮은 언덕과 갯바위 검은 바다가 좋아서 수시로 걸으며 애무하지 않았더냐? 네가 좋았다. 봄날의 청보리와 갯가의 돌멩이 하나가 좋았다. 그러니 우리 헤어짐은 깔끔하고 말짱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서운하다 길을 막지도 말고, 아쉽다 바지가랭이 붙잡지 말아라. 이미 마음은 떠났고 결심은 단단하다. 울고불고 청승도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그대 잘 가셔요. 훗날 혹여라도 그립거든 바람처럼 다녀가셔요!'하는 게 옳다. 부디 나를 보내다오. 사랑스런 기억 한 조각과 애틋한 별리 품에 품고 가련다.

풀향기 싱그럽게 매듭 하나 짓고서 저 푸른 물결 사뿐히 즈려밟고 가려니 그대도 다만 좋았던 기억 품에 품어 행복하길....

가파도 넘실거리는 것들 못내 그리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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