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만 너를 향한 심장이 좋다
앞산 산마루 위에 별 하나 떴다. 능선은 어둡고 별은 반짝인다. 소나무 늘어선 능선은 뾰족뾰족하고, 갈참나무 늘어선 능선은 둥글둥글 부드럽다. 뾰족한 능선에 머물던 별은 발끝을 세워 종종거렸고, 부드러운 곡선을 품은 별은 까박여 졸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수수만 년 달려온 별빛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심장이 뛰고 혈관은 팽창해서 단단해졌다. 막연한 그리움에 이유도 없는 동경이 물결처럼 일렁이기도 했다. 원시의 빛과 점과도 같은 마음이 뒤엉켜 밤하늘에 오로라 하나 만들었다. 오늘도 그렇다. 검은 능선위에 반짝이는 별 하나, 오래된 전설이라도 들려주려는지 유난히 밝게 빛났다.
개밥바라기 별이라고도 했고 금성이라고도 했다. 때로는 샛별이라 부르기도 했고 먼 나라 꼬부라진 말로는 비너스라고도 부르는 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별은 아니다. 달처럼 그저 태양빛 반사하는 것으로 밤하늘을 밝히는 행성이다. 별은 스스로를 태워 빛나는 존재라야만 한다. 그래서 밤하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짝이는 것들은 모두가 태양이다.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존재 별. 하늘을 우러러 별빛에 감탄하고 감동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유전자 깊은 곳에 내재된 태초의 기운과 원시의 하늘을 달려 마침내 내게 다다른 별빛이 만났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그리움 하나 품에 품는지도 모른다. 그리우면 그만이다.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얼굴 별이 뜨듯 마음을 채우고, 가슴을 비추면 됐다. 금성이 별이면 어떻고 행성이면 어떻랴. 능선 위에 곱게 뜬 개밥바라기 하나면 그만이다. 개밥바라기별 곱게 뜨듯 나는 고운 얼굴 하나 가슴에 띄워 사랑을 키운다. 꽃으로 피고 열매로 빛날 날들이다. 너는 별로 뜨고 나는 별바라기 곱게 하늘을 본다.
굳이 따지고 이유를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이란 애매모호한 말이 얼마나 현명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지 모른다. 나는 수시로 그냥이란 말로 사랑을 대신하고, 니가 다 좋아!, 하는 말로 너를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어렵다거나 이유가 빈약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너의 유혹은 무지개처럼 다양하고 찬란해서 적절한 무엇을 찾을 수가 없으니 다만 나는 '그냥!'이라고 말을 하게 되고, 그런 이유로 '니가 다 좋아!' 얘기를 하고야 만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뒤란의 텃밭을 살비다가 피나무 여린 이파리 하나를 만났다. 초록이 짙어 그림자마저 어둡게 수묵으로 변한 여름인데 피나무 곁가지 하나 연두색 곱게 햇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단지, 연두색 여린 잎이라 시선을 끈 건 아니다. 손가락 하트 만들어 아양을 떨던 나라서 이파리 하나 그대를 향한 심장으로 곱게 자라서 어찌나 반가운지 몰랐다. 마음을 준다는 것, 마음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궁금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피나무 예쁜 잎이 눈에 들어왔으니 피나무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록색 검색창에 물었다. 피나무는? 간단한 질문에 앎을 자랑하고픈 말들이 주절주절 뜬다. 나무의 키는 20여 미터까지 자라고 꽃은 6, 7월에 걸쳐 피는데 꽃의 향기가 특별하고 꿀은 약효가 뛰어나다, 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어 수피는 섬유질이 풍부해서 끈이나 밧줄로 만들어 피나무란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하고, 목질은 가볍고 단단해서 가구의 목재로 쓰이기도 했다고 했다. 게다가 덧붙이기를 서양에선 달콤한 꿀의 유혹을 빗대 'bee tree'로 불리운다고도 했다.
그랬다. 몰랐던 사실이 소낙비 쏟아지듯 쏟아졌다. 그저 빨리 자라기도 하고 곧게 자라는 나무라서 서까래로 많이 쓰였다는 정도에다 피나무 느타리버섯이 풍미가 좋다는 정도만이 상식의 전부였었다. 쓰임은 다양한 나무였다. 게다가 그 유명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피나무 목판에 판각돼 세상에 나왔다고도 한다. 보통 판각에 많이 쓰인 나무는 산벚나무였는데 돈이 궁했던 김정호가 피나무를 자르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초록창이 알려준 피나무는 그런 나무였다.
개밥바라기별이나 피나무는 그냥 지금처럼 능선 위에 곱게 뜨고, 밭자락 귀퉁이에서 초록으로 흔들리면 그만이다. 꿀을 뜨려고 피나무를 바라보지 않았으니 그렇다. 밧줄을 만들려고 곁에 두지 않아서 그렇다. 더군다나 서까래를 걸칠 집은 이미 사라졌으니 목재로의 피나무도 내겐 없다. 너를 향한 내 뛰는 심장이라서 피나무가 예뻤을 뿐이다. 그리운 얼굴 가슴에 띄워준 개밥바라기별처럼 그저 그대에게 향하는 내 마음이 거기에 머물러 좋았다. 오늘도 난 별 하나 바라보며 당신에게 마음조각 하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