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소원일 수 있을까?

말을 쓰는 것만으로 심장은 뛰었다

by 이봄

"사랑이 소원일 수 있을까?"

단 한 줄의 문장을 쓰고서 뛰는 심장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철부지라서 그럴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는 이미 반 백을 넘었으니 청춘은 아닙니다. 꽃 한 송이 보면서 찌르르 감정이 흔들리고, 때로는 뒹구는 낙엽 하나에 눈물짓는 사춘기 소년은 더더욱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심장이 떨리고, 눈물샘이 터지곤 합니다. 웃기죠? 내가 나를 봐도 웃긴다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생겨먹은 게 그런 것을... 어쩌면 참 무심하고 대책 없다 얘기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는 그렇습니다. 타고 난 성품대로 살다 갔으면 합니다. 꽃이 좋고 그 향기가 좋습니다. 봄날의 아지랑이 은근슬쩍 마음을 흔들면 흔들려 휘적이는 내가 좋습니다. 굳이 팔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불어 가는 것에도 이유가 있을 터였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 쏟아지는 소낙비도 그렇습니다. 다 이유가 있겠고 존재 가치가 있겠지요. 다들 세상은 이렇게 살아야 해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옆구리 찔러가며 충고도 하지만 나는 질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랬습니다. 광대가 돼서 얼굴에 분칠을 하고 입술도 빨갛게 칠한 우스꽝스러운 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민들레는 민들레로 화살촉 같은 이파리에 노랗거나 하얀 꽃송이 피워내야 민들레이듯 나는 꿈 하나에 사랑 둘 품에 품어야 비로소 나로 완성되는 날 하루쯤 맞이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소원 하나 가슴에 품었습니다. 봄날의 찔레꽃으로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늘어진 덩굴마다 붉게 피는 복날의 능소화여도 좋겠습니다. 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날엔 소담스러운 가을국화로 향기 짙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어느 계절, 어떤 날이 되었든 뜨겁게 사랑하다 한 잎 꽃잎으로 떨어졌으면 합니다.

차마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합니다. 당신 사랑해도 될까요? 묻던 날에 나는 바짝 마른 낙엽으로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아니요. 나를 사랑하면 안 돼요. 아니, 사랑하지 마세요!, 하는 대답이 날아든다면 이내 불타버릴 낙엽이었습니다. 매캐하게 연기가 피어나고 몸뚱이는 이내 붉게 타올라 한 줌 재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조심스럽고 안타깝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좋았습니다. 날은 많고 그만큼의 절망이 똬리를 틀고 이빨을 드러내던 날들이기도 합니다. 그랬지요. 길은 어둡고 나는 술 한 잔에 취해 시큰 시큼한 날들을 걷고 있었습니다. 삼키기도 그렇고 뱉기도 뭣한 시큼한 날은 시큰둥 시어 빠진 날이었죠.

당신 손 잡던 날에 나는 그랬습니다. 그저 손과 손 맞잡아 하나 둘, 하나 둘 손 흔들어 행복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깍지 낀 손에 단단히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잡은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원이란 말이 오히려 더 가볍고 짧은 말 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영원히 잡은 손 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갈등이라고 하죠? 실타래 꼬여 풀지도 못할 상황을 갈등이라고 표현합니다. 생각이, 몸짓이 얽히고설켜 꼬여버린 갈등을 생각했습니다. 풀지 못하는 생각의 부딪힘은 아닙니다. 칡은 오른쪽으로 나무를 휘감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휘감아 둘의 꼬임은 꼬여버린 실타래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다만 당신과 나 칡이 되고 등나무 돼서 맞잡은 손 다시는 풀리지 않았으면 하고 소원했습니다.

"사랑이 소원일 수 있을까요?"

네, 사랑은 소원입니다.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꿈으로 나타나고 꽃으로 피기도 합니다. 툭툭 짧은 비명으로 나부끼는 꽃잎이 사랑의 결말이라고 해도 나는 꽃으로 피고야 말겠습니다. 기껍고 행복한 마음입니다. 깍지 낀 손 놓고 싶지 않습니다. 날마다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힘을 주게 됩니다. 덩굴손 더듬거려 나무줄기 휘감아 하늘에 닿듯 나는 깍지 낀 당신 손 맞잡아 행복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이 소원입니다.

사랑이 소원입니다.

놓지 않을 갈등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