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나씩 쌓았습니다
오늘도 말 하나 쌓였습니다. 이지러졌던 달이 다시 차오르듯 날마다 말이 쌓여 동그란 보름달로 자라납니다. 어떤 날에는 소낙비 훑고 간 흙냄새로 쌓였고, 때로는 이웃의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연기로 쌓이기도 했습니다. 눈물 훌쩍여야 하는 신파로 말이 쌓이는 날엔 어쩐지 눈물 콧물 쏙 빼고야 마는 아픈 말로 쏙쏙거리기도 했지요. 마음 한 자락에 넓다랗고 깊은 방 하나 만들고서 쌓이는 말들 반듯하고 깔끔하게 쌓기 시작했습니다. 요일별로 날짜별로 잘 정돈된 말들이 시간이 지날 수록 쌓이고 모이더니 이내 방 하나를 다 채워가고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음의 방은 쌓이는 말 만큼씩 제 크기를 알아서 키웠지요. 쌓이고 쌓여도 차서 넘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쌓인 말들이라고 다 끝까지 남는 것도 아니어서 더러는 희미해져 잊혀지기도 했지요.
말이란 것도 결국은 살아가는 모양새의 조각 중 하나라서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날 더우면 땀방울 쏟아내는 땀냄새가 남았고, 봄이면 꽃이름 하나 달랑 남게 마련이었습니다.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꽃, 가슴팍에 맺히면 목련꽃 한 송이 곱게 쌓였습니다. 주절주절 수다로 행복했던 날에는 청포도 향기롭게 말들이 엮여 포도송이로 남기도 했고, 가뭄에 허덕이다가 마침내 단비 쏟아지는 날에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던 마른 논에 콸콸 소리로 몰려들던 도랑물이 남기도 했지요. 쌓인 말들은 내 손톱이기도 했고, 머리카락 두엇 이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오늘에 쌓였던 말 찿아내서 들여다보면 과거의 말이나 오늘의 말이 별반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시간은 쌓였음에도 사람 사는 일이란 게 그리 별나지 않다는 얘기겠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만들어 온 삶의 모습 또한 경천동지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 얼마나 될까요. 어제의 모습이 오늘에 닿아있는 연속성이 오늘의 나이기도 하고, 오늘 쌓인 말은 결국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말 하나 쌓일 거라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말이 오늘을 대표해 추억으로 쌓일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날은 덥고 매미는 목이 쉬도록 울고 있습니다. 마당에 꽃들은 폭염을 이겨내며 겨우겨우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설렁설렁 부는 바람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쉬어가는 그늘이기도 했고,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로 우쭐한 날이기도 합니다. 어떤 말 하나가 남아 꾹꾹 눌러 쓴 일기장에 남을까?
보고 싶습니다. 그리움은 늘 지병처럼 바튼 기침을 만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당신 사랑합니다!, 고백을 할 때에도 마음엔 말 하나 남고야 맙니다. 보고 싶습니다. 따뜻하다 라는 말이, 손 꼭 잡아 걷고 싶어!, 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지만 나는 굳이 깍지 곱게 끼고서 당신과 뙤약볕을 거닐고 싶습니다. 미쳤지요? 맞아요. 제정신이 아닌 게 맞습니다. 미쳤다 말을 듣는다 해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끓는 대지보다도 더 절절해서 그렇습니다.
"날마다 당신 떠올려 나는 행복합니다"
붓을 들어 말을 쓰고서 심장이 요동치고야 마는 나라서 그렇습니다. 날마다 당신은 맑은 햇살로 아침을 열고, 저녁달 곱게 하루를 닫았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해 떠서 아침이 되고, 달 떠서 밤이 된다는 건 그저 자연입니다. 당신 떠올려 행복한 하루는 자연입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세상이 그랬듯 나는 당신을 보며 자연스레 시간에 젖어들고, 계절에 동화돼 행복합니다. 사람이 만든 많은 말들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서 중언부언 말을 않겠습니다.
"나는 날마다 당신 생각만으로 행복합니다!"
이름 석 자 곱게 쓰고서 2018년 7월 무덥던 날, 마음엔 말 하나 쌓이고야 맙니다.
"사랑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