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잎 하나 툭 날아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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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가지 끝에 매달렸던 가을
마침내 툭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시간은 자정 칠흑의 벽면
길게 그어진 노란 비행궤적.
궤적을 사이에 두고 어제와 오늘이 나뉘고,
가을과 겨울의 경계 서릿발처럼 돋았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버들잎 하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
짧은 낙하였지만 봄에서 시작된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봄
잔설 녹은 개울가에 버들개지 몇몇
솜털 보송하게 뒤집어쓰고 이른 봄을 불렀다.
돌돌돌 깨어난 냇가 수다스러웠을 날에
햇살 한 줌 마법처럼 흩뿌려졌을 때
봄날의 고양이 볕바라기로 졸고,
새벽하늘엔 뎅그렁 뎅그렁 별들이 반짝였다.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무엇을 기다렸을까?
툇마루도 모자라 까치발에 길게 뺀 목까지
저 먼 어디쯤에 시선을 빼앗기고야 마는
봄은 그렇게 기다림으로 시작됐다.
연둣빛 여린 잎 바람에 낭창였다.
길게 풀어헤친 머리카락 곱게 빗질하듯
소낙비 한 번에 천둥소리 두어 번
가지마다 이파리마다 초록을 더하면
맨드라미 붉은 벼슬 해처럼 타오르고,
짭조름 여름날 됫박으로 여물 때
초록이 짙어 차라리 밤 같은 그림자 하나
품 넓게 드리웠다.
종종거리던 산새 한 마리 날개를 접고
코흘리개 사내 녀석들 새까맣게 졸던 날
뒤란이며 뒷동산 가득
여름 여름 열매 맺어 여름이라 했다.
어디로 갈까?
싱숭생숭 갈피도 없는 날,
어쩌면 설움 어깻죽지에 이슬로 내려앉았다.
시도 없고 때도 없는 그리움 덤으로 들러붙어
붉은 피 한 방울 거머리처럼 빨아대고,
속절없는 그리움들 멍울 되고 단풍이 됐다.
그래, 어디로든 가야 할 마음
서리되고, 단풍 되고, 바스락 낙엽 되고...
세 계절 굽이굽이 돌고 돌아 마주한 이별.
털북숭이 버들개지로 시작된 계절은
섣달 초하루 툭 겨울로 날아들었다.
어디로 갈까?
장돌뱅이의 미투리는 튼튼하고 질겼다.
괴나리봇짐에 미투리 두어 벌,
천 리인들 어떻고 백 년이면 두려울까?
가야만 만날 무엇이 이 길의 끝에 있다.
가을이니까.
너는 섣달그믐에 왔다 했고,
나는 2월 그믐에 왔다 했다.
겨울과 봄은 이웃한 계절이었지만
담장 높은 이웃일 거라 생각했다.
지척에 두고도 쉽사리 잡지 못하는 손,
데면데면 그렇다지만 손사래 치지 못하는
그런 이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언제나 계절은 봄에서 시작됐고
여름을 지나고 가을에 다리품을 쉬었다.
봄과 겨울은 그래서 먼 길을 돌아서야만
만나게 되는 이웃이었다.
그렇지만
굽은 길에서 만나는 바람은 길처럼 굽었다.
굽은 길에서 만나는 돌은 둥글었고
향기는 부드러워 사납지 않았다.
들짐승의 발톱은 닳아 날카롭지 않았고
때로 포근한 품을 내어줄 것만 같았다.
모난 돌이 둥글 동글 몽돌쯤 됐을 때
툭하고 날아든 버들잎처럼
너와 나는 그렇게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멀고 오랜 시간을 건너 마침내 너를 보았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바람은 길을 닮았고 향기는 달콤해서
벌 나비 함박눈으로 내릴 터였다.
12월, 그리움 노래가 되는 달에
난 마냥 네가 좋다.
흥얼흥얼 종일 부를 노래 하나 가슴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