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이 달리고 말言이 뛰었다

초원엔겨울이 내렸다

by 이봄

낱말 하나씩 불러다가 문장을 만들었다. 너는 여기에 서고 너는 거기쯤 있으면 되겠다. 일일이 자리를 정하고 치장도 했다. 각자 흩어졌던 말들은 어울림이 서툴기도 때로는 핏대를 세워 다투기도 해서 줄을 맞춰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하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마치 콧구멍 벌름거리며 저항하는 야생마를 조련하는 수고스러움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가끔은 낙마의 고통이 찾아들 수도 있다. 저항도 없이 순순히 따라줄 말馬이 몇이나 될까? 자유로운 바람으로 떠돌던 녀석을 우리에 가두고 그것도 모잘라 어느 날 갑자기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틀어쥔다면 순순히 등짝을 내어줄까?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초원은 눈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방금까지 딛고 섰던 대지는 아가리 사나운 늪으로 변했을 터였고, 불어오는 바람은 분명 향기 잃은 흙바람일 터였다. 자유를 잃어버린 발굽은 천 근의 족쇄가 되고, 초원을 달려 단련된 근육은 스스로를 얽어매는 사슬이 되기에 충분했다. 저항의 이유는 충분했고 조련의 수고는 그만큼의 치열함이 필요했다.


말言도 그랬다. 때로는 발톱을 세우고 때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입을 떠난 말은 의기양양 거들먹거렸고, 천둥벌거숭이로 난장을 치기도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루고 달래야 할 말들은 새초롬 앉아있기도 하고, 연신 콧바람 뿜으며 골목을 날뛰기도 했다. 낱말을 불러 줄을 세우고 치장을 하는 건 그래서 늘 어려운 일이었다. 눈깔사탕 하나 입에 물려주면 되는 말이 있는가 하면, 윽박지르고 눈을 부라리는 게 통하는 녀석도 있었다. 말마다 타고난 성품이 있고 향기가 있었다. 백인백색百人百色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이 다르듯 말言이란 놈도 다르지 않았다. 천 리를 달리는 적토마도 때로 박차로 옆구리를 차야만 하기도 하듯 말도 적당한 채찍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있잖아? 나, 당신이 좋아. 사랑해!" 고백을 말을 할 때에도 그에 걸맞는 목소리와 아양을 섞어야만 마음이 온전히 전달 되듯이 생각의 조각들을 꿰어 문장을 만드는 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사랑'이란 말에 숨결을 불어넣는 한 호흡은 '~~해!' 동사가 붙어야만 비로서 향기를 얻고 예쁨을 얻는다. 행동으로 보여지지 않는 말은 단지 공허한 울림으로 그치고 만다. 뛰어야만 눈에 보이고 가슴에 닿는 것.

"벌써 겨울이야. 날도 추운데 고생이겠다"

"그러게. 벌써 겨울이네. 뭐 그래도 괜찮아!"

말은 말을 부르고 뛰는 심장을 공유하게 해. 그런 문장 한 줄 만들려고 흩어진 말들을 고르고 불렀다. 너는 여기로 그리고 너는 저기로... 산만하게 뛰놀던 말들이 마침내 어울렁 더울렁 어깨를 걸고 눈높이를 맞출 때 비로서 나는 향기로운 꽃 한 송이 받쳐들고서 그대에게 한 무릎을 꺾었다.

"난 너만 있으면 칼바람 사납게 울부짖는 겨울이어도 괜찮아! 너는 내게 꽃이고 봄바람인 걸. 겨울이라 오히려 좋은 지도 모르겠어. 너의 체온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걸... ㅎㅎ"

삭풍 몰아치는 빈 들녁에 눈이 내리고 갈기 휘날리며 말이 달릴 때 심장 가까운 곳에선 향기로운 말들이 떼지어 꽃으로 폈다.

"겨울이라 오히려 좋아. 오늘이 내겐 봄날이고 화양연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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