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요 당신

아프지도 말고요

by 이봄

새벽 여섯 시가 다 됐습니다. 오늘은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 입니다. 오늘을 정점으로 손톱달 자라듯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밤이 깊다,라는 말 보다 여명이 밝아온다 얘기하는 게 오히려 더 어울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남들은 하루를 시작하려는 시간이지만 나는 늦은 잠을 청해야만 하는데 쉽사리 잠들 수가 없습니다. 피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낮과 밤을 한 허리에 매고 사는 요즘이라서 피곤은 피곤을 부르고, 잠은 잠을 부르고야 맙니다.
몽롱한 아침을 열어 희뿌연 저녁을 걷게 됩니다. 아침에 맞이하는 오늘은 해걸음 저녁에 문을 닫아야 살아가는 모양새가 적당합니다. 발은 오늘에 딛고 서서 머리는 내일에 기대어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몸뚱이는 천 근 만 근의 중력에 허덕이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아서 낮과 밤이 뒤섞여서 혼미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자야만 하고 쉬어야만 할 시간입니다. 새벽의 만찬은 잠을 불러서 눈꺼풀은 어찌나 또 무거운지요. 그렇지만 일기를 쓰듯 당신께 말 한마디 남기고픈 마음이 더 크다할까요?

밥은 먹었어? 난 감기로 병원이네"
부랴부랴 씻고서 버스에 올라서야 당신의 문자를 봤습니다. 감기로 병원에 왔다는 당신인데 난 그 시간에 꿈길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말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주절거리는 말이 있지요.
"아프지 마. 니가 아프면 나도 아파!"
그저 말은 말로 끝나는 허무한 공명이었을까요? 당신은 아파서 병원이라는데, 너 아프면 나도 아프다면서 나는 그 시간에 드르렁 드르렁 꿈길을 해맸다니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말이 얼마나 감동일 수 있는지, 마음은 또 얼마나 향기롭고 어여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아프다면서 그래서 병원이네 얘기를 하면서 그 말에 앞서 밥은 먹었냐고 묻는 말에 뭐라 답을 할까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시야는 이내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심장은 장맛비를 뚫고 질주하는 자동차의 와이퍼처럼 요란스럽게 쿵쾅였지요. 멈출 수도 없는 요동입니다. 늘 말은 꽃으로 피어 벌 나비를 부른다고 떠들었습니다. 표현하는 마음은 향기로와서 세상을 꽃대궐로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오늘 그 꽃대궐에 앉아 황홀하고 행복합니다. 눈물 한 바가지 흘린다해도 부족한 마음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봅니다. 아니 온 몸으로 느낍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해 줄 것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밤을 새워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고 싶습니다. 두 손 꼭 잡고서 '힘내요 당신, 아프지도 말고요' 도란도란 말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가 않습니다. 그저 말 뿐인 말 하나 남기는 게 전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당신이 좋아해주는 글씨 하나 남길 기회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도가니에 찬바람 부는 이 겨울에 너무도 뜨거운 말 한마디 가슴에 담았습니다.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당신 있어 행복한 나처럼 나도 당신에게 작은 미소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프지 마셔요. 나도 아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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