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그대가 그립다
"커피 한 잔 할래요?"
요즘 으레 인삿말로 건내는 말이다. 남녀와 노소가 따로 없기도 하고, 밤과 낮이 다르지도 않다. 눈 부비고 일어나 물 한 잔을 찾듯이 커피를 찾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고, 밥을 대신해 아침의 요기로 자리한 지도 꽤나 되었다. 바쁘다거나 귀찮다거나 하는 핑계에 습관을 더해 밥은 거를 수 있어도 커피를 뺀 하루는 상상하기 어렵다.
라면으로 한 끼를 떼운다,고 궁상을 떨어도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 손에 들어야 성공한 직장인쯤 된다 생각할 수도 있다. 골목은 크고 작은 커피숍이 수를 놓았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소위 대세를 장악한지 오래 되었다. 그 대세에 도시와 농촌이 다르지 않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또한 다르지 않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려 땀으로 목욕을 하는 현장에서도 그렇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한 번도 화장실에 오갈 일 없는 염천의 복판에서도 "커피 마셔야지?" 묻는 둥 마는 둥 불쑥 말을 건내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탄다. 정수기는 꾸역꾸역 뜨거운 물을 쏟아내고 종이컵에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간헐천의 뜨거움, 끓는 지구의 몸부림, 느닷없는 분출, '덥다, 더워. 아, 우라질!' 걸레를 물었는지 육두문자 삼매경이던 그도 '햐, 좋다' 미소를 짓고야 만다. 익숙하다는 건 그런 거다. 낯익은 믹스커피 한 봉지의 힘은 불볕에서도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익숙함이다.
"당신은 입맛이 참 촌스러워!"
"그래? 맞아. 난 자판기의 달달한 커피가 좋아!"
"커피 잘 내리는 집에서 사왔어. 마셔봐?" 압구정 현대아파트 어디에 있는 무슨무슨 집이라고 장황설을 떠는데 난, 그냥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맛, 뭔가 거들먹이는 거만함, 낯설은 것은 도발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해서 불편을 준다. 평안을 깨는 소리다. '어때? 괜찮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똥말똥 쳐다보며 그가 물을 때, 쇠똥쇠똥 꿈벅이며 나는 말했다. '어? 어... 괜찮네, 맛있어. 저... 정말이야!'
에휴, 타박이 날아든다. 로스팅이 어쩌고, 원두의 원산지가 저쩌고.... 볶는 시간의 차이가 쓰고, 떫고, 시고, 담백한 맛의 농도를 좌우하고 향의 깊이를 만드는 거야.... 그는 한참을 커피예찬을 주절였고, 저렴한 입맛의 난 가만가만 눈길을 피해 딴청을 피웠다. 귀는 분명 두개골을 관통해 하나의 통로에 매달린 좌우의 덮개일 거란 생각도 했다. 오른쪽 귀를 통해 들어온 말은 이내 득달같이 왼쪽으로 달려가 왼쪽 귀를 열고는 허망하게도 달아났기 때문이다. 그를 무시하고자 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그의 말은 늘 달콤했기에 그랬다.
"당신 입맛은 좀 그래. 저렴하고 촌스러워...."
호호호....웃는 그는 달콤하다.
그가 '믹스커피라'면 좋겠는데 여전히 그는 원두커피를 좋아하는 '원두마니아'다. 입맛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일까. 다만, 익숙한 손길로 휘휘 저어 마시는 믹스커피의 편안함이 그립다고 해야겠지. 손 닿는 저기쯤에 놓여 있어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손에 닿는 일상.
하지만 익숙하다는 게 영원한 일상임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수 만의 사연으로 약속은 미루어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톡 찢어 휘휘 마실 수 있는 건 믹스커피가 주는 그만의 달콤함이다.
오늘도 뙤약볕에서 커피를 마시며 문자를 한다. "날이 후텁지근 더워. 햇살은 또 얼마나 따가운지. 당신, 그늘만 골라서 다녀, 알았지?"
"응, 알았어. 당신은 뭐해?
"커피 한잔 하는 중...."
"자판기 커피? 암튼, 촌스럽기는....호호호"
여전히 그는 달콤한데 익숙한 그를 톡 하고 찢어 휘휘 저을 수가 없다.
나는 늘 그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