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다. 왼쪽 가슴에 콧 수건을 달고서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삼 월 어느 날, 널따란 운동장에 모여 까까머리에 단발머리 코흘리개들이 학생이 됐다. 유치원이란 게 없지는 않았지만 열에 한 명이나 다녔을까? ㅏ ㅑ ㅓ ㅕ, ㄱ ㄴ ㄷ ㄹ도 모르고 입학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였기도 했다.
기억이 정확한지 어쩐지는 하도 아득한 세월이라 장담은 못해도 기억은 이렇다. 교과서를 받아 들고 처음 글을 배웠을 때 첫 문장은 이렇게 돼 있었다.
"너 나 우리, 대한민국"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되고 그 우리가 나라를 만든다. 뭐 이런 뜻일 게다. 사실, 국민이란 말도 '나라'를 위한 '나'를 강조하는 단어라고 하는데, 나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니.... 아, 말이 제 알아서 샛길로 빠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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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아, 순희야 놀자!"였던가? 두 볼 발그랗게 살 오른 계집애와 사내 녀석이 함박웃음을 웃고 있었다. 귀여운 녀석들....
"너 나 우리!"
그래, 너와 나로 만나 알고 싶은 궁금함으로 새벽을 밝혔던 날도 참 많았다. 뭐가 그리 좋던지 그냥저냥의 말만으로도 호호 깔깔 웃기도 했고, 때론 어깨 토닥이며 위로의 말로 서로를 감싸기도 했지. 오가는 말들은 작은 울타리 하나 만들었던 것도 같다. 그 안에서 교감하며 우리가 된 듯도 하고, 조금 더 단단해진 친구가 됐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우리란 말이 참 좋다. 너와 나 사이에 그어진 경계가 무너지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 둘만의 아늑한 공간이 되어주는 것 같기도 하지.
"우리 같이 점심이나 먹을까?"
말이 주는 따뜻한 온기는 가슴을 데우고, 삶의 고단함을 견디게 하는 힘으로 다가선다. 처음 휴대폰이 거리에 나타났을 때 의아한 상황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혼자 뭐라 중얼거리며 걸어가던 사람을 보며 뭐지?, 했던 일.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미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아둔함일까? 아무튼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 휴대폰을 매파 삼아 너는 내 안에 들어와 우리가 됐다. 곁에서 얼쩡거리며 쭈뼛쭈뼛 눈치만 봤을 나는 말 많아 행복한 우리가 되어 네게로 갔음은 물론이다.
국어책에선 이렇게 말을 했다지만
"기영아, 순희야. 같이 놀자!"
나는 이렇게 주절거리게 된다.
"은경아, 우리 같이 놀자!"
너와 나, 우리라서 참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