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랗고 흰 것은 본성이 그럴까? 토양이 그러할까?
심심이 극에 달하던 시간, 쓰레빠 질질 끌며 뒷동산에 올랐어. 잣나무가 햇살을 가려 그늘은 시원하고, 바람은 솔향기를 머금어 나른했는데 사실, 그 그늘 밑은 뭐라 얘기를 해야할지 난감한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바다의 백화현상과 같은 그런 황폐함을 얘기하면 맞겠다 싶고. 소나무, 참나무, 화살나무, 느릅나무, 싸리나무에 진달래, 가래나무와 다래덩굴. 익숙하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녀석들이 혼재하고, 쟁투하는 숲이 숲이기도 하고 건강도 하지. 근데 잣숲은 그렇질 못해. 품지 못하는 아집으로 관목은 쫓겨나고, 관목이 없으니 풀뿌리는 유월의 갯바위처럼 미역을 녹이듯 철쭉을 녹이는 거야. 바라봄은 푸른데 실상은 흙먼지 풀풀, 늘 고비의 황사가 몰아치고야 말아.
"너나 나나 온갖 것들 품어야 숲이지"
숲은 늘 크거나 아님 작거나, 품이 넓거나 혹은 좁거나 저마다 한 뼘의 햇살을 탐하며 그렇게 살았고, 어쩌면 그 탐함의 마지막 부식에 기대어 온갖 살아 있음을 얘기해야 건강하기도 하고 내일을 말할 수 있는 거야. 온갖 생명이 우후죽순 기회를 엿보는 게 숲이요, 산이기도 해. 한 때의 늠름함에 기대어 다래덩굴은 아양을 떨며 졸참나무 등줄기를 타고 오르다가 '뭐지? 얘가 정말 날 받쳐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 먼지같은 미련도 남기지 않고 다른 나뭇가지로 순을 뻗어 옮겨가. 그게 덩굴의 묘미요, 수수 만 년 전수된 삶의 숙명이기도 해.
"더는 예서 살 수가 없어. 날 잡지 마!"
앙칼진 뿌리침에 황망히 손을 놓더라도 미련은 남아야 하고, 후회는 조수의 무거움으로 철썩여야 하는 게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어. 부대껴 사는 건 인간들의 그것이나 초목의 그것이나 거기서 거기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 뭐지? 말이 길을 잃었어. 한 치 혀는 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사직전의 젖이 되기도 해. 이성적이고 논리에 어긋나지 않는 말들이 서로를 어우르면 좋겠는데, 고백하자면 취했어. 알콜이 또르르 혈관을 뛰어다니며 천둥번개를 몰아치는 거야. 천둥벌거숭이, 대책이 없다는 얘기 이기도 하고, 아주 굳이, 또 굳이를 더해 좋게 얘기하자면 해맑은 영혼이 나푸나풀 날개짓을 하는 것이겠지.
"망태 할아버지는 늘 두려웠지!"
그렇게 모진 그늘 밑에서 망태버섯이 망탯살 늘어트리고 있었어.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초파리도 서넛 윙윙 번잡을 떨었는데, 문득 그런 거야. "너! 자꾸 울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 하는 어미의 협박? 아니면 공갈이라고 얘기해도 되려나 몰라도, 여튼 그랬어. 애먼(?) 호랑이를 동원하기도 하고, 말하기도 거시기 한 한센병환자를 들먹이며 겁박하던 날들이 있었지. 두렵고 무서웠던 말들과 폭탄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몇몇의 단어가 있었어.
내가 취했듯 거실에서 잠꼬대 사납게 뒤척이며 드르렁드르렁 취한 후배가 있어. 농촌에서 태어났으니 그럭저럭 한글이나 깨우치고, 형제자매 도와가며 땀흘리는 후배인데, 횡설수설 말이 얽히고 설켜 해독이 불가한 모습으로 " 형님, 정말 나라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침을 튀겻어. "왜? 뭔 일이 있었니?" 묻기도 민망해서 입력된, 그렇지만 너무도 민망한 얘기로 빙빙 말을 돌렸다만 어찌 그 마음을 모를까?농촌에 살면서 농삿일로 끼니를 연명하는 사람 몇이나 될런지 모르겠어. 품지 못하는 잣나무 숲이 현실인데.
관광농원이어도 좋고, 캠핑장이어도 좋아. 뭐면 어때? 등 굽은 소나무로 고향산천 지키겠단 꿈이 잠꼬대로 울먹이며 자는 거야.
서류는 복잡하고 기준은 까다로워. 좋아, 안전하고 건강한 무엇이면 좋지. 근데, 부러 복잡한 통로에서 긴가민가하는 암호를 해독해야 하고, 여차저차 벗어난 길목에는 또다른 복병이 월도를 휘번뜩이며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묻는다면야 "에라, 개새끼들!" 개거품인들 물지 못할까?
애들 잡아간다는 '망태 할아버지'와 호환마마의 '호랑이'가 정말 무서웠는지?뒤척이며 아파하는 녀석은 무엇에 덜덜 떠는지 궁굼도 하다. 괜슬히 조우한 망태버섯은 또 뭔 죄가 있으랴. 취한 내가 주절주절 사설이 깊었고, 말은 횡설수설 갈피가 없지만, 그래도 맘이 애잖함이야 이심전심이려니...^^
사족 하나_
망태버섯은 두 종이 있는데, 대나무밭에서 자라는 흰망태버섯은 그 맛이 좋아 귀한 대접을 받고, 위 사진의 노란 망태버섯은 독이 있어 아예 식용이 불가한 버섯이라는 얘기.... 그 뿌리는 같을진데 무엇이 문제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