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꽃 하나 피었다

여름은 늘 메꽃으로부터 왔다

by 이봄

길이 녹음으로 짙어질 때 땅은 뜨거웠고, 바람은 눅진해서 무겁기만 했다. 살갗에 달라붙는 것들은 온통 찐득하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벌레처럼 사납고 간지러웠다. 계절은 붉은 장미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의 끝. 어쩌면 여름의 시작일까? 달력 한 장을 뜯어내거나 넘겨야 하는 날쯤 되었을 때, 논두렁이며 풀숲엔 꽃 하나 피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꽃은 그저 때 되면 피고 졌다.


"어머? 컵에 이건 뭐야?"

"아, 그거? 메꽃이야. 새벽에 들어오다 잘라왔어"

"아이고, 참 너란 남자는 늘 애 같아ㅎㅎ"

"그런가?"

남자가 머쓱하게 웃고 여자는 또 덩달아 '호호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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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푸른 밤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메꽃 줄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채 피지 못한 꽃송이 두엇 줄기에 매달고서. 남자는 한참 바라보다가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손톱을 질끈 눌러 줄기를 끊었다. 머그컵에 물을 담고 잘라온 메꽃을 꽂았다. 사나흘 시간이 지났을까? 미처 달아나지 못한 졸음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에 연분홍 고운 메꽃이 들어왔다.

봄과 여름이 겹쳐지는 날이면 늘 메꽃은 그렇게 피었다. 논두렁에도 길가에도 수줍게 피어 여름이 왔음을 알렸다. 달궈진 땅이 후끈 열기를 뿜어낼 때면 '솨아아' 소낙비 몰아가고 흠뻑 젖은 초록에 점점이 별처럼 피는 꽃.

"날 좀 보시어요?"

요란을 떨지도 않고, 분칠 덧칠도 없는 새벽 까만 하늘에 은은히 빛나는 별과도 같을까? 남자에게 여름은 별처럼 초록 하늘에 피는 메꽃으로부터 시작됐다.


여자가 남자에게 왔을 때 비로소 봄이 완성되는 것처럼 여름은 메꽃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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