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간 햇살 비처럼 내렸다. 겨우내 칙칙하고 가라앉았던 세상이다. 어쩐지 매캐한 냄새라도 날 것만 같았던 햇살이 봄이 되면서부터 투명해지고 맑아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이슬비처럼 싱그러워서 때때로 가지에 매달려 영롱한 이슬로 반짝였다. 땅으로 내린 햇살은 쉬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돌담 틈으로스며 돌나물 여린 잎을 어루만지기도 했고, 뒤란 텃밭에는 꽃다지 몇 개 이른 잠을 깨웠다. 스며들고 맺혀 온통 봄날의 싱그러움을 만든 건 말갛게 갠 햇살이었다.
꽃을 피우고 이파리를 틔웠다. 하얀 꽃 무더기 낙화로 흩날리더니 나뭇잎 무성히 자랐을 때 가지마다 초록의 햇살 방울방울 열매로 맺혔다. 봄부터 초여름의 어느 날까지 하루를 거르지도 않고 비처럼 내린 햇살 마침내 쌓이고 쌓여 붉게 타올랐다. 초록으로 맺혔던 햇살은 때가 됐구나 했을까? 이파리 밀쳐내며 하나 둘 발그레 얼굴 붉혔다.
정오의 쨍한 햇살 손바닥으로 가려 하늘을 본 적이 있다면 그 선명한 핏빛 붉음을 떠올릴 터였다. 선홍색 붉은 아름다움을. 가지마다 붉게 타는 꽃불이 빛났다. 여기저기 횃불을 밝혀 향기로 타올랐다. 6월이 향기롭다.
낮게 가라앉은 구름이 햇살을 가렸다. 부는 바람은 그래서 시원했고 주위를 가득 채운 나무들은 그림자마다 풋풋한 풀냄새로 기분 좋던 날, 주차장 경계를 따라 줄지어 선 자두나무를 만났다. 바쁠 것 하나 없는 시간이어서 커피 한 잔 뽑아 든 걸음은 느릿느릿 어기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참 좋지?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까 별게 다 좋다. 그치?"
"응, 맞아! 구름이 끼어서 덥지도 않고 좋네"
하릴없는 느슨함이 만들어주는 여유로움에 한껏 취했을 때 그가 말했다.
"어머, 저건 뭐야?"
그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니 나뭇잎 사이로 빨간 열매가 보였다. 초록 이파리 사이로 보이는 빨강은 더욱 붉었다.
"저거? 자두네. 벌써 자두가 익을 땐가? 하긴 세월이 참 빨라"
빨갛게 익은 자두에 이끌려 자두나무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가지 끝에 매달린 자두 한 알. 어찌나 곱던지 가지를 당겨 땄다.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참 예쁘다' 감탄하다가 훅 끼쳐오는 향기에 훔칫 놀라고 말았다. 달콤한 향기, 돌담에 스며든 고운 햇살 한 줌이 향기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정말 예쁘다. 어쩜 이렇게 색깔이 곱니?"
"그러게. 그러고 보면 세상 곱지 않은 건 없는 거 같아?"
그러다가 그가 말했다.
"사실, 난 자두가 아픈 과일이야"
"왜?"
"있지. 전에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어느 날 그러시는 거야? 은경아? 자두가 먹고 싶어! 그래서 병원 주변을 다 둘러보고 했는데도 자두를 구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할 수 없이 물렁하게 익은 복숭아를 사다 드렸어. 근데 그게 마지막이었어"
"아, 그랬구나. 그러게 가슴아픈 과일이네. 자두가"
그가 말꼬리를 흐렸을 때 손바닥에 놓인 자두가 더욱 빨갛게 타탁였다. 그래 사는 건 가슴에 옹이 서넛 만드는 거야. 누구나 다 가슴에 아픈 이야기 하나쯤 있을 터였고, 그게 누군가에겐 자두이기도 할 터였다. 옹이는 톱날도 도낏날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한다. 그만큼 켜켜이 쌓여 단단해진 상처고 아픔이기 때문이겠지. 아파 단단해진 옹이도 봄부터 쌓여 꽃불로 타는 햇살인지 모르겠다.
젯상에 자두를 올린다는 그의 아픔이 어느 날 조금은 덤덤해지는 거, 품에 옹이 하나 아무는 일이다. 플라스틱 바구니 가득 알 좋은 자두가 시선을 유혹할 때 먼 바다의 파도가 일렁이겠지만 킁킁 냄새 맡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