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경적이 울리더군요. 사거리에 멈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멍하니 생각이 없었습니다. 멍 때리고 있었지요. 그렇지만 아, 순간적으로 열이 받더라고요. 내가 잘한 것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요.
"우라질, 뭐야?"
정말 그랬습니다.
"받아라, 받아! 이왕이면 왕창 받아라!"
그런 생각도 들었지요. 모르겠습니다. 좀처럼 걸려오지도 않는 전화가 서넛 있었습니다. 친구의 전화가 있었고, 형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나, 외롭고 힘들면 잠들 시간인 거 뻔히 알면서도 새벽을 깨우던 사람들입니다. 그 전화를 받을 수가 없더군요. 그저, 안부전화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근데 그렇더군요. 속이 시끄러워서 그 안부조차도 묻고, 말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잘 지내지?"
물을 터였고, 나는 또 그 뻔한 대답을 너스레 떨 수가 없었습니다.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내 '부재중 전화'라고 메시지가 뜨더군요.
"아, 네. 잘 지내요!"
말하고 싶었습니다.
잔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연홍색 잔 하나에 파란 바다를 닮은 잔 하나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쁜 잔 둘. 그랬습니다. 내 알기로 별로 술을 즐기지도 않는 그가 잔 둘을 들고 왔습니다. 이왕이면 혼자 마시게 되는 순간이라도 예쁘게 마셨으면 좋겠다 하더군요. 아끼게 되더군요. 새벽 깊은 밤에 돌아와 기울이게 되는 술잔은 그저 유리컵. 그렇잖아요? 좋은 술은 좋은 사람과 마시고 싶고, 더욱이 좋은 잔은 좋은 사람과 거기에 어울리는 좋은 술 한 잔 향기롭게 마시고 싶지요. 그랬습니다. 그 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홀로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싸움이라도 한 번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 못된 말 이라도 언성 높여 떠들 것을...
너무 아프지 않게 가슴 후벼 파는 말이라도 하고, 들었으면 하는 마음.
그렇잖아요. 잊어야 한다면 , 그래야만 한다면 뭔가 원망스럽고, 밉고, 싫은 구석이 있어야 아프거나 아쉽거나 하는 따위가 덜 하겠는데, 그런 거 눈 말똥이 뜨고도 나는 찾을 수가 없어 더욱 오늘이 싫습니다.
어찌 그리 다정했는지? 어찌 그리 예뻤는지? 어찌 그리 말이 통했는지? 어찌 그리 날 미치게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