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고 달지

그런 거 같아

by 이봄

안개가 끼고 미세먼지가 밀려오는 계절이야. 낮 볕은 제법 따듯하고, 밤바람은 싸늘해서 옷깃을 여미게 되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처럼 뜨겁다가 소름이 돋는 변화무쌍한 게 살아가는 일인 거 같아. 어제까지는 온통 향기로운 꽃밭을 걸으며 자지러지다가 잠에서 깨어나 꺼이꺼이 어깨 들썩이고야 마는 거.

설익은 감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어. 눈은 찡그려지고 혀는 떫어 마비가 됐지. 입술마저 얼얼해져 베어 문 감 퉤퉤 뱉어야만 하는 거. 떫고, 시고, 쓴 풋 익은 계절의 경계에 서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게 사는 일이다 싶기도 해. 오르내림이 없는 인생은 업겠지만 될 수 있으면 그 등고선의 변화가 심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맘처럼 되겠어. 발버둥도 치고, 이른 새벽 말갛게 샘솟는 첫 물 정성스레 모셔다가 천지신명께 빌기도 한다지만 그렇더라도 그래.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닌 거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때로 고여 머물다 넘쳐흐르는 거. 그렇게 만나지는 바다는 짜고, 달고, 시고... 온갖 마음이 뒤섞여 만들어 낸 바다인데 바다라고 뭐 특별할까? 그저 비로 내려 도랑물 만들고, 그 도랑물들 만나 강이 되었을 뿐, 알알이 스민 마음이야 변할 수 없는 거겠지. 다만 흐를 뿐이야.

늘 그랬던 거 같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을 앓았어. 장맛비 세차도 그랬고 함박눈 소담스레 내려도 그랬던 거 같아. 봄날의 흐드러진 꽃밭에 앉아서도 그랬고... 생겨먹은 게 영 그렇다 싶기도 하지. 하지만 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래서 오늘이 있다 싶기도 해. 무미건조 밍밍한 시선은 재미가 없잖아. 이왕이면 바라봄에 감탄이 있으면 좋지 않겠어. 찔레꽃 하얗게 무더기로 피면 오래된 전설 같은 이야기 하나쯤 떠올리면 좋지. 이야기에 빠져 또르르 눈물 한 방울 흘린다고 해도 나는 그게 좋았어. 찔레꽃 여린 순 꺾어 껍질 벗겨 먹던 얘기도 곁들여가면서....

걷던 길은 담장으로 막히고 곧게 뻗은 길은 끊겨 더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 입술은 움쩍이는데 차마 목청을 돋궈 뱉어낼 수가 없는 날이야. 침묵은 안개로 천지사방을 덮었어. 발치만 벗어나도 길은 사라지고 아득하기만 하지. 옴짝달싹 할 수가 없어. 붉게 타는 가을은 골짜기마다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나는 연기가 매워 눈물 훔치고야 말아.

일상의 소소한 말들 만으로도 함박웃음 웃던 날은 얼마나 달달했는지 몰라. 새옹지마였을까?

시고 달고! 마음이 깊었으니 가슴에 옹이 하나 크고 단단하겠지. 다만 단단해진 옹이 쓰다듬는 날이 올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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