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아비가 이름을 지을 때는 봄날의 걸판진 꿈처럼 살아라 했을 텐데 살면서 느끼는 이름은 춘래불사춘 이더이다. 봄은 봄이로되 봄이 아닌 말. 그래서 살면서 맞게 되는 고비마다 생각을 했지요. 도대체 봄은 정녕 오는가?, 하는 거. 내일이면 봄이다 하는 뜻으로 살았습니다. 오늘이 힘겨워도 내일은 봄 일 거야 하는 생각은 힘이고 희망으로 존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숨 크게 한 번 고르고 나면 다음이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좋았습니다. 한 번의 좌절이 결코 무릎 꿇는 일 없는 날에는 그랬지요. 살다 보면 이래저래 실패도 있고, 때론 좌절도 있다지만 그렇다고 꿈을 놓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열정이고 청춘이었을까요? 청춘까지는 아니었다고 해도 분명 열정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봄날이야!, 하는 이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비가 막내아들 이름 하나 지었을 때 분명 그랬으리라 믿습니다. 흔들리고 의심하는 건 모두 자식인 내 탓입니다.
그렇더라고요. 징글징글 일이 엮이고 길은 허방 해 질 때 더욱 그랬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름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역린. 아비와 어미의 은덕으로 세상에 온 나지만 배은망덕하게도 아비의 작명이 부른 불행이 있지나 않은지 미친 소릴 주절이기도 합니다.
"잘 되면 내 탓, 잘 못 되면 조상 탓!"
옹졸하고 치졸하고 못 된 놈입니다. 어쩌면 오늘 선산에 누워계신 아비가 가슴팍을 두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걸 아들이라고 낳고 내가 웃었나?"
하시겠지요. 죄송합니다. 근데 그게 그렇더라고요. 아, 아닙니다. 제가 믿음을 잃고 자신감을 놓치다 보니 떼를 쓰게 됩니다. 시골 뒷마당에 큰 그림자 드리운 밤나무가 고마운 저입니다. 하나 둘 남은 아비의 흔적이지요. 아름드리 밤나무를 보면 늘 아비가 생각납니다. 이승의 짧은 인연 저승에선 오래도록 함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아비의 작명이 운치스럽고 멋스럽습니다.
내일이면 봄!, 이라니?
이런 문학적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선견지명이 있으셨는지 막둥이는 또 생겨먹은 게 딱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 가면 행복하겠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