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

지장을 찍다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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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서 한 장에 비장함 뚝뚝 담아

올망졸망 거친 숨들 줄을 세우고

나 죽어도 결코 마음 하나 천 년을 가리라!

다짐하고 맹세하듯

엄지손가락에 먹물을 묻혔다.

무엇을 그리고 쓸까?

예쁘고 고와서, 고맙고 감사해서.

머리카락 풀어헤치고 광대놀음에

날이 샌다고 해도 그만,

조롱거리로 회자된다고 해도 그만.

두루마리 돌돌 말린 종이 풀고 펴서

그 위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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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타고 먹물이 스미고

긴 호흡 한 번에 날숨을 멈췄다.

늙은 나뭇가지 거칠게 긋고 청춘의

꽃봉오리 손톱 날로 피웠다.

지문 다 닳은 촌로의 숨은 가빴고

분칠하고 돌아선 여인네는 발그레

어여쁘기도 했다.

피고 지는 꽃들아 뽐내지 마라.

너희들 산천을 희롱 해도

스미지 못하는 들녘 하나쯤 있다 하니.

잔설이 녹고 냇물 아기처럼 아장거렸다.

꽃도 없고 새도 입 다문 날에도 그랬다.

너로 해서 피고 우는 봄날이 있다.

맹세하고 다짐하듯

지장 꾸욱 눌러 꽃 한 송이 피워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바람 서성이는 골짜기에 구름 하나

봄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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