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같이 밥 먹을래?" 말을 했을 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약간의 짜증과 심드렁한 표정이, 녹작지근 무너지는 햇살에 누렁이는 댓돌 위에서 뒹굴이 삼매경에 개팔자가 상팔자임을 애써 말하는 것처럼, 이래도 그만이요 저래도 그만인 게으름이 있다고 해야 할까? 버선발로 뛰어나온 반가움이라면, 그렇다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던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미안해지고 말겠지만, 그도 저도 아닌 떨떠름은 칠 월의 땡감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닌 놈이 무슨 개소리냐?, 하겠지만 뱃가죽이 등가죽을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룬다고 한들 걸인에게도 취향이란 게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구걸에도 결국은 고깃국이냐 아니면 얼큰한 김칫국이냐 하는 선택은 있게 마련이다. (단지, 문 밖에 얌전히 놓인 먹다 남은 진미라는 게 문제일 뿐)
명보극장 사거리를 지키던 터줏대감이 있었다. 검은색 벙거지에 남루한 옷차림, 그 남루함에 걸맞은 덥수룩한 수염이 명함을 대신했다. 계절을 넘나드는 패션과 24시간 때를 무시하는 떼 낀 담요로 나름의 철학을 발산했던 그는 명보극장 건너편 은행나무 그늘을 제 집 삼고서, 때를 조금 넘긴 시간이면 늘 충무로 인쇄골목을 골목골목 누비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마시다 남은 술은 한 빈병에 애지중지 따라 모으고, 다이어트에 꼬르륵 주린 배를 감싸 쥐던 미스김의 배부른 공깃밥은 하늘이 주신 축복이었다. 동가식 서가숙 하는 그였지만, 거리 위의 만찬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모든 음식을 밥상에 초대하지는 않았다.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비린내가 나는 자반고등어라든가 물 좋은 가자미 튀김이라든가 하는 소위 비늘 달린 생선은 언제나 구박의 대상이었다. 사흘을 굶었다고 해도 생선은 늘 '노~땡큐!'였다. 걸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리라.
"팔딱이는 생선은 가라! 눈 멀뚱히 뜬 비린 것도 가라!"
누렇게 뜬 흙냄새가 났다. 신작로를 달려가는 트럭의 꽁무니에 매달린 먼지들은 뽀얗게 구름처럼 피었다가 안개처럼 내렸다. 길가의 풀잎에도 앉았고 장독대 늙은 독에도 눈처럼 앉았다. 터벅터벅 가로수 그늘을 징검다리 삼던 꼬마 녀석은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긴 숨을 몰아쉬었다. 점점이 앉은 초가지붕이 이마를 맞대고서 풀썩풀썩 뿜어내는 연기가 보였고, 성미 급한 닭들은 때 이른 날갯짓으로 횃대를 찾았다. 저녁이 먼지처럼 마을에 내릴 때, 뻐끔대는 담배연기처럼 밥 짓는 연기가 굴뚝을 빠져나오면 누렇게 뜬 먼지 냄새가 났다. 매캐한 연기에서 왜 누런 황토먼지가 풀썩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모른다는 표현도 사실은 다 거짓말이다) 신작로의 먼지처럼 밥 짓는 연기도 흙냄새를 풍겼다.
아버지 앞에 놓인 자반고등어 한 토막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소년은 '에라 모르겠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고등어의 유혹을 향해 젓가락을 날렸다. 그랬던 것 같다. 섬광이 번뜩이고 살을 에는 고통이 번개처럼 달려들었을 때, 고등어를 향해 날아가던 젓가락은 째그락 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이런 버릇없는 놈 같으니라고. 아버지 드실 고등어에 어딜...."
어머니의 뭐라, 뭐라 이어진 잔소리도 귓등으로 아득했던 소년은 그 뒤로도 번쩍이는 섬광과 살을 에는 고통과 자주 마주치곤 했다. 취사장 뒤편으로 끌려간 이등병은 날아드는 조인트에 한동안 일그러진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이등병 주제에 반찬투정을 해. 감히! 그리고 인마 고등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냐? 빠져가지고...."
장마철 흙먼지 나게 등짝을 얻어맞던 날, 뽀얗게 피어오르는 것들에서는 언제나 먼지냄새가 났다.
명보 도사 그는 그런 사연쯤 하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흘 굶은 그가 여전히 '생선은 가라, 생선은 가라!'를 외치고 있을지 궁금했을 때, 목울대를 기어오르는 말 하나가 생선의 가시로 걸렸다.
"그래? 그렇구나. 정 시간이 그러면 안 나와도 돼. 나중에 먹지 뭐. 괜찮아, 정말이야 난 괜찮아!" (우라질, 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을까? 젠장 나도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고.... 됐다고 그래라~~!)입 안 가득 괸 침을 삼키듯 가시 하나 꿀떡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