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비구름이 하늘을 메우고 물러날 기미가 없는 날이야. 건듯 바람이 불면 후둑후둑 빗방울 몇 개 개암처럼 떨어지고, 그러다 다시 짐짓 모른 척 낯빛을 바꿔 딴청을 피우고 말아. 햇살은 두터운 먹구름에 가려 오간데 없어 침울한데 밤부터 집중호우에 피해가 우려된다고 조심하라는 문자가 날아들었어. 좀처럼 반짝이는 햇살을 마주할 수 없는 여름이 진득하니 달라붙은 날들이야. 벽에 매달린 시계가 없었더라면 밤인지 아니면 낮인지 조차 종잡을 수도 없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날들이라고 한들 뭣 하나 지나칠 것 없겠다 싶어. 애매모호한 시간에 바람이 불고 어쩌다 그런 볕이 찰나 지간에 낯짝을 보인다 싶다가도 이내 비가 내려. 개판이란 얘기지 뭐. 이도 저도 아닌 것들이 죽마고우라도 되는 양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는 것만 같아서 어찌나 볼썽사나운지 모르겠어. 흉금에 숨긴 발톱들을 울긋불긋 치장하고서 평화롭고 고요한 얼굴로 때를 기다리는 시간, 수시로 날아드는 안전 안내 문자만 번거롭다 할까
사납고 어지러운 구름에 가려졌던 햇살이 마침내 먹구름을 몰아내고 봇물처럼 쏟아져 내린 날이 오늘이고 보면, 그깟 장마라고 해야 길면 얼마나 길고 사나우면 또 얼마나 사납겠냐 싶어. 본디 있던 빛을 다시금 되찾은 날,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 아래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걸판지게 춰야만 했을 오늘인데, 빛이 밝으면 그림자 역시 짙다던가. 푸른 대나무 날카롭게 베어내서 의기양양 죽창으로 나부껴야만 했을 오늘인데.... 도려내지 못한 상처마다 독버섯만 극성스레 돋더니만 갈팡질팡 날씨처럼 수십 년 세월에도 저잣거리가 시정잡배들로 시끄러울 밖에. 에혀, 두엄 썩는 냄새야 가을날의 풍성함을 준다지만 잡놈들 썩는 냄새엔 애먼 코만 문드러지고야 말아. 입이며 코며 단단히 틀어막고 나 몰라라 세상을 등지고서야 쥐구멍에 깃든 볕이라도 쬐려는지.
멀쩡한 몸뚱이로도 어쩌지 못한 것들 꿈이려니 잊고서야, 본디 있던 것 애초부터 없었다 해야 덩실덩실 춤사위로 행복할까 모르겠다. 서투른 궁금함도 섣부른 다짐 하나까지도 본디 아무것도 없다 해야 행복이야.... 행복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