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彩色 인생은 없다

by 이봄

맹숭맹숭 무미건조 멋대가리 없는 인생이라

할 지라도 무채색은 없다. 단조로워 지루할 수는 있어도 분명 따분한 인생에도 어느 한 구석에는 햇살 같은 노랑이 있다거나 아니면 부끄러워 살포시 숨긴 연분홍 진달래꽃 한 송이쯤은 있을 터였다. 세상을 채우는 온갖 것은 저마다의 파동을 가지고 있어 그에 맞는 빛깔을 갖게 마련이니, 재미도 없고, 매력도 없어 곰팡이와 호형호제하는 더벅머리 무지렁이라도 그만의 색깔은 있다. 다만, 감춰진 것을 꺼내 보이지 못함이 아쉬울 터였고, 미처 알아보지 못하는 얄팍한 눈이 안타까울지도 모른다.

별것도 아닌 그림 하나를 그리는 데에도 정신 산만하게 물감을 펼쳐놓고서 요란을 떨어야만 한다. 붓도 크기별로 구색을 갖춰야만 하고 물감을 개고 색을 만들어야 하는 널따란 널빤지도 하나 있어야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름을 닮은 초록이며 바다를 빼다 박은 파랑도 넉넉하게 준비해야 어쭙잖은 세상이라도 흉내 낼 엄두가 날 터였다.

사람이야 말해 뭣할까? 시시각각 때때로 피고 지는 마음에는 몇 가지 색이 필요하려는지 헤아릴 수 조차 없는데 무채색이라니? 어불성설 말이 안 된다. 누구는 짭조름하고, 누구는 심심하고, 누구는 고소할 뿐이다. 나는 달콤하고 너는 시다고 하여 으스댈 일도 없고 풀 죽을 일도 없다. 주어진 삶의 조각에 정성 들여 붓질을 하고 맑은 바람과 향기로운 햇살에 기대 잘 말리면 그뿐, 걸쳐 입은 적삼을 타박할 일은 없다. 하물며 엄동설한 눈보라 치는 계절에 동사할 일 더더욱 없고 보면 갈잎 누런 빛 이어도 감지덕지 고맙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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