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풀풀

by 이봄


한갓지게 걷는다는 건 어쩌면 사치인지 몰랐다. 두 손은 주머니 깊숙이 구겨 넣고 시선은 길바닥에 고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잔뜩 움츠린 몸은 살 오른 곰처럼 뒤뚱거렸고 언 눈을 피해 걷는 걸음은 종종종 바빴다. 부는 바람은 가슴을 파고들어 아양을 떨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옷깃을 여미는 밤이었다.

풀풀 입김을 뿜었다. 그것은 마치 내연기관의 배기통을 입에 물고서 연신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노후된 차량에서는 여지없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듯, 낡고 녹슨 입에서는 매연과도 같은 입김을 뿜었다. 매연으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증가가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기듯 연소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은 거리를 떠돌며 다툼을 부르고 반목을 키울 터였다. 허옇게 드러낸 송곳니를 상대의 목덜미 깊숙이 박았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지는 혈투는 사바나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지만 목책을 세우고 각자 섬에 갇히는 유배형을 자초하는 꼴이었다.

겨울이니 추웠다. 모처럼 답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날이었다. 잔뜩 풀을 먹인 이불 홑청처럼 까슬까슬 목을 세운 날씨는 뒷목이 다 뻣뻣해지도록 거들먹거렸다.

"물렀거라! 동장군의 행차니라!"

길가에 도열한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길을 내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일사불란했고 순간의 머뭇거림도 용납하지 않았다. 위세에 놀란 몇몇은 잔뜩 풀 죽은 몰골로 뒷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숨어든 사람들은 저들만의 언어로 목청을 높였고 가끔 삿대질도 오갔다. 대로는 번잡했고 골목은 북적였다. 대목을 챙기려는 장사치들은 장사치대로 종종거렸고 내일은 없다는 듯 몰려나온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이 애써 만든 시간에 꿰어져 몰려가는 걸음이었고 군상들이다.

풀 먹인 것과 풀 죽은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허옇게 입김을 뿜어 각자의 영역을 긋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살점 하나 없이 가시만 남은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뼈만 앙상한 양이 풀밭을 서성였다. 지는 해가 허옇게 입김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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