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매달려 침침히 빛나던 백열등은 30촉이었을까? 더는 밝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화장실에 길게 매달린 백열등은 모두 침침했고 희미했다. 어쩌면 가정경제와 국가경제를 위한 호들갑이었는지 모르겠다. 잠깐씩 켜고 끄는 그 시간에 빌딩을 짓고 고속도로를 뚫는다는 광적인 믿음의 강요가 그 저변에 있었겠다 싶지만, 이 천금 같은 시간에 말꼬리를 잡고 싶지 않아서 잡은 꼬리를 놓기로 했다.
유년의 기억은 늘 어두웠다. 전기가 없던 시절엔 '호야'라고 부르던 석유 등잔에 불 밝혔으니 그나마 촉수가 낮은 백열등을 구박할 처지도 아니었다. 뉘엿뉘엿 해 지는 시간이면 우물가에 앉아 호야에 들러붙은 그을음을 닦아야만 했다.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야 겨우 벗겨지던 그을음은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닦아 밝힌 등불이 밝기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밥을 입에다 제대로 떠 넣는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는 없었다.
침 묻혀가며 눌러쓰던 글씨는 그래서 그런가 삐뚤빼뚤 몰골이 사나웠다. 밤길을 걷는 걸음걸이를 닮은 글씨가 침침한 등불에 대거리를 하듯, 젊은 날에는 왁자지껄 시끄럽고 요란하게 밝은 게 좋았다. 사람들은 북적이고 노래는 숨 가쁘게 쿵쾅거리는 걸 굳이 찾아들었는지 모른다. 고요하고 은은한 것 사이에 기다랗게 선을 긋고 담장 하나 세웠다. 반항이었을까? 반항은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니까 저잣거리 복판에 서서 고함 한 번 내지른 거였겠지.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서 달구경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날이 늘었다. 바람 불면 별들이 찰랑찰랑 흔들렸고 별들 부딪히는 소리가 투명하게 울렸다. 은은한 달빛과 어슴프레 젖은 하늘이 어찌나 고운지 형용할 수가 없었다. 바라봄이 좋아서 뺨을 할퀴는 겨울바람은 별것도 아니었다. 무시해도 좋은 바람이 겁먹은 똥개처럼 짖었지만 이미 마음은 달에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