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온갖 얘기를 늘어놓았고, 그의 어미는 귀를 쫑긋 세워 화답했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어머나? 그랬구나. 세상에.... 그래서?"
까르르 웃다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호들갑을 떨어가며 반색하면 아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쪼르르 하루를 압축해 풀어놓았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섞어가며 광대의 그것 인양 이야기는 이야기를 불렀고, 어미의 흐뭇한 미소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흔한 풍경이었다. 가끔은 노래 불렀고 또 어떤 날에는 학교에서 그렸다는 그림을 꺼내 들고는 싱글벙글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반 아이들 모두가 그림을 칭찬했고 더러는 자신을 부러워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으며, 여기까지 말을 하다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그날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했다.
"삼촌? 엄마? 선생님이 뭐라 하셨는지 아세요?"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가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한 얼굴로 이야기의 절정을 장식했다.
'아민이는 어쩜 못하는 게 없니? 그림도 이렇게 잘 그리고 말이야...."
말리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끝이 없을 터였지만 학원을 가야만 했고, 숙제를 해야만 했기에 건널목을 가로막는 차단봉처럼 아이의 어미는 말을 끊었다.
"나머지는 이따가 학원에 다녀와서 듣자. 알았지?"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자청해서 다니는 학원이 몇 개나 되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큰 탓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숙제에 매달리고는 했다. 얼마 전에는 선행학습 같은 시험에 그러니까 초등학생의 교과과정과는 별개의 시험을 치르다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제 딴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에 어지간히 당황을 했을 터였고 그게 분했을 터였다. 집에 돌아와 그런다. 문제를 풀다 말고 울었다고 말을 하다가 아이는 또 울먹였고 그런 아이를 어미는 안아주었다.
그래, 그런 욕심이 있어야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데에 동력을 얻게 마련이다. 노력하지 않는 꿈은 그저 몽상에 지나지 않고 헛된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욕심을 가져야만 한다. 다만, 과한 욕심에 스스로를 다치면 안 된다는 말도 뺄 수가 없다.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자고 나면 한 뼘씩 키를 키우는 아이라서 꿈꾸는 중에도 꿈이 바뀌고 말하는 중에도 말이 바뀐다.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다 말고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는 또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아 책 한 권을 펼쳐 들고는 중얼중얼 말들 사이를 거닐었다.
"저는요, 그림도 그리고 싶고.... 음, 노래도 부르고 싶어요. 아,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생각도 드는걸요...."
"얘야? 벌써부터 뭘 할 거야. 미리 정하고서 나머지를 밀쳐낼 필요는 없는 거야. 백 가지 꿈을 꿔도 괜찮아. 지금은 그게 좋아"
한 우물을 파야만 한다던 말은 삼촌이 살던 시절의 말이고, 지금은 생각하는 모든 게 다 꿈인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많은 꿈을 꾸고 욕심도 부렸으면 좋겠다. 너무 아프게 울지만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