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선산이야 등 굽은 소나무가 지킨다 하고, 연로한 부모는 못난 자식이 모신다 하였으니, 이 황량한 겨울 휑한 가슴이야 뉘 있어 지켜주랴. 본디 저 잘난 것들이야 도회지가 제격이라. 괴나리봇짐에다 입신양명 꿈을 담아 진작에 떠났거늘, 낙향의 쓴 잔이야 너 있어 채우고야.
보길도 가는 길엔 지국총지국총 노를 젓고
고매하신 선비님네야 잔물결에 흥을 더해 水石에다 松竹까지 골고루 불러놓고 잔 들어라. 잔 들어라. 술잔에 뜬 저 달月도 오랜 벗을 삼고 말고. 일러 무엇하랴. 넉넉잡아 다섯 친구 파도인들 못 넘을까. 세연정 물결 위에 배 띄워 놀고 지고.
말라 앙상한 달맞이 풀 꺾어다가 눈 코 입 만들고서 남은 줄기는 뚝뚝 잘라내어 두 팔을 삼고 나니 허허 모양새가 제법이다. 치켜보고 뜯어보고 요리조리 돌려봐도 흡족하다 하던 차에 아뿔싸 두 발모가지 어딨던고. 아서라 마라. 달아날까 두려워서 애당초 생각도 없다 했다.
다 떠난 빈 들에야 바람만 요란한데 남은 너와 동무 삼고 어울렁 더울렁 어깨라도 걸고 나서 이 겨울을 건너가도 좋고말고. 재잘재잘 조잘조잘 저잣거리 풍문이야 당초부터 뜻 없으니 귀 닫고 입 다물어 선비님네 고고함이나 흉내 낼까. 말 많은 사내놈은 여인에게 인기도 없다 하니.
너는 다만 거기에 그렇게 있거라. 오다가다 심심하면 꽃 보듯이 널 찾으마. 이렇다 저렇다 말도 말고 그저 그렇게만 있어주면 더는 욕심내지 않을 테니, 춘삼월이 오기도 전에 꿈인 듯이 사라질 너라지만 오늘은 나와 같이 동무하며 놀자꾸나. 선비님네 다섯 벗도 부러울 것 없는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