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흙먼지 잔뜩 뒤집어쓰고도 잇몸 환하게 드러내며 꼬맹이들이 웃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는 꽁무니에 몇 섬의 먼지를 매달고서 신작로를 내달렸고, 아이들은 섬처럼 드리워진 포플러 그늘에 앉아 웃고 떠들었다. 이마를 맞댄 몇 놈의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가는 데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십 리가 채 못 되는 길을 걸어 집에 도착하는 건 그래서 늘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이었다. 까만 머리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기 전에 아이는 머리를 털었다. 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마당에 서서 바람에 머리를 감았다. 달궈진 여름의 열기는 더운 바람을 앞세웠다. 또르르 땀방울이 굴러 내렸다.
부쩍 새벽을 밝히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한 번 달아난 잠은 좀처럼 다시 부를 수가 없어서 아침까지 멀뚱멀뚱 빈 방을 지키고야 말았다. 먼지 날리던 신작로는 시커먼 아스팔트로 꽃단장을 했고, 길가에 늘어섰던 포플러나무는 뿌리째 뽑혀 유명을 달리했다. 포플러나무가 뽑힌 구덩이엔 복숭아나무가 대신 심겨 봄마다 발그레 꽃을 피웠다. 고개를 넘어와 불던 바람은 꽃그늘에 앉아 노닥거렸다. 수줍은 꽃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나 보다.
섬처럼 드리워졌던 그늘도 사라지고 그늘에 앉아 배꼽이 빠지게 웃던 아이도 사라져 없었다. 모두 먼지처럼 세월에 흩어졌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방에 우두커니 앉아 그늘이며 꼬맹이들을 불러 세웠다. 까만 눈을 꿈쩍이고 있던 아이를 불렀다.
"네가 철수구나! 맞지? 아닌가....."
머리를 긁적이자니 겸연쩍었다. 녹이 벌겋게 슨 세월이 가로막고 있었다.
외로웠다. 불 꺼진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는 건 커다란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였다. 사납게 발톱을 세운 짐승이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째진 눈을 흘기며 무덤덤한 세월이 앉아 있었다. 호호호, 하하하 맞장구를 치며 호들갑을 떨던 때가 언제였을까? 더듬더듬 팔을 뻗어 기억을 더듬다가 피식 웃었다. 쓸쓸하고 외롭다는 말을 물에 말아 삼켰다. 물을 마시듯 씹지도 않았다. 까끌거리는 세월이 목구멍을 찌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