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엿뉘엿 해가 지고 바삐 밤하늘에 달이 걸리면 사람들은 철새라도 되는 양 떼 지어 우르르 몰려다녔다. 땅속을 달려온 무리들은 지상으로 난 입구를 통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흡사 큰 비를 직감한 개미들이 떼 지어 높은 곳으로 피난을 떠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걸음은 분주했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한가로움은 없었다. 앞만 보고 걸었다.
고단한 하루였을 터였다.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인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널따란 도로엔 꼬리를 문 차들이 연신 하품을 했다. 눈을 부라린 전조등이 어째 천 근의 무게로 감기고 있었다.이고 진 짐의 무게로 허리는 휘고 정신은 아득할 터여서 정체된 도로는 아우성치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아야만 했고, 고단한 몸을 달래주어야만 했다.
교태스러운 불빛이 찰랑거렸다. 잔에 담긴 한 모금의 술이 윙크를 했고, 밖에 내걸린 가마솥에선 연신 허연 입김을 뿜어댔다. 가뜩이나 허기진 사람은 그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열린 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잔의 술이 돌고 뚝배기의 국물이 반쯤 줄어들 때쯤이면 취기에 흥을 돋우고, 포만감에 흐뭇한 미소를 흘릴 터였다.
그의 하루도 다를 게 없었다. 눈코 뜰 새 없이 종일 종종 대다가 돌아온 시간엔 둑 하나 툭 무너지듯 고단함에 한 무릎을 꿇을 게 분명했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토닥토닥 위로의 말로 부은 종아리를 쓸어내리며 엷은 미소도 지을 터였다. 하루를 산다는 건 누구나 그랬고 그도 그랬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소원했다. 마침내 너의 긴 하루가 끝났을 때 '잘 자!'라는 나의 말이 달콤한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르르 봄눈 녹듯 그의 고단함을 녹이는 말이었으면, 그런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