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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by 이봄


가뜩이나 껑충한 키에다가 학의 목처럼 고개를 기다랗게 빼고는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는 꽃이 있었어. 남들은 다 동분서주 종종걸음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동안에도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는 질끈 두 눈도 감았지. 붕붕 벌이 날고 나비가 나풀나풀 아양을 떨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어. 관심이라고는 일도 없었지. 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였어. 그러니까 면벽수도하는 고승처럼 미동도 않고 자기 자리만을 지키고 있었어. 그렇다고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가련다 하는 따위의 거들먹대는 꼴도 없었지. 그냥 햇살 따가운 한낮의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얘기하는 게 맞는 말일 거야. 동네 개들이 일제히 컹컹 짖는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었지.

감나무에 감이 여물듯 가지 끝에 달 하나 매달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달덩이 같은 꽃을 피웠어. 어라? 요 녀석 보게나! 하는 짓이 하도 잠망스러워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고야 말아. 옅은 노란 꽃잎 몇 장 하늘하늘 펼치고는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는 거야. 번잡스러운 벌 나비가 오히려 귀찮았을 테지. 그냥 날 조용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니? 입을 삐죽 내밀고서 투덜거렸을지도 모르겠어. 있잖아, 얘들아? 난 너희에게 줄 꿀도 없고 수다를 떨고 싶지도 않거든. 그러니까 나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

상사화 같은 사랑일지도 몰라. 삼백예순 다섯 날 중 단 하루도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세상 어느 한 구석에는 그런 사랑, 그런 그리움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싶어. 온몸을 부대끼며 아옹다옹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는 게 보통의 모습이겠지만 어쩌겠어. 그리움이 짙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다면야 굳이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뜯어말릴 이유는 없잖아. 아, 요런 사랑도 있었구나! 조용히 지켜보면 돼. 아니지,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할 거야.

뿌옇게 동트는 새벽이면 눈물범벅 쓰라린 이별을 맞이할 터였지만 때마침 내린 이슬에 누가 볼세라 쓱 눈물도 훔칠 거야. 그리고는 다시 밤이 찾아오고 감나무 가지 끝에 고운 달 매달리기만을 기다릴 테지. 그리움, 기다림, 꿈, 내일, 희망, 사랑.... 한 꼬투리 안에 들어앉은 마음들이야. 누가 우선이고, 누가 더 중요하다 가릴 수도 없어. 도토리 키재기라고 고만고만한 콩알을 잰들 무슨 소용이겠어. 그냥 한 데 묶어 다발로 생각해야 하는 말들이야. 다시 밤이 찾아오고 아침이 밝을 내일을 기다린다는 건 그래서 꿈꾸는 거고 희망을 품었다는 얘기야. 결국 저 먼 끝에는 사랑이 기다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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