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적 사진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 시간에 꽃은 피었다. 꽃잎과 이파리에 떨어진 빛으로 가늠하자면 해 질 녘이었을 테고, 계절이 저무는 때였으리라 어림짐작뿐 정확한 기억은 없다. 어느 바다였는지도 모른다. 파도 높은 날에는 턱밑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모래를 쓸어갔다. 모래언덕에 바람이 불었다. 연분홍 메꽃이 덩굴에 매달려 피었고, 키 작은 해당화는 언덕에 납작 엎드린 채 해바라기를 했다. 멀찍이 떨어져 숲을 이룬 해송은 바람을 토해내었다. 솔숲을 빠져나온 바람은 쉬익 잔뜩 목이 쉬었다. 애써 계절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엷은 햇살이 내렸고 가뜩이나 미지근한 햇살을 바람은 호호 입김을 불어 식히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바다가 철썩철썩 뺨을 때렸다. 철 지난 바닷가를 배회하는 것들의 등을 떠밀었고, 그것도 모자랐던지 뺨을 때렸다.
씀바귀가 꽃을 피웠다. 햇살을 닮은 노랑으로 치장하고서 부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를 좀 보아주세요? 아양을 떠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계절이 저무는 바닷가는 쓸쓸했다. 제일 먼저 사람이 떠났다. 다음으로는 날갯죽지에 힘을 붙인 철새가 떠났고, 이별을 기념하겠다고 청승을 떨던 연인이 떠났다. 그렇게 바다는 비었다.
떠나지 못하는 것들만 남아 노을빛으로 졸았다. 갈매기 몇 마리 파도와 입씨름을 했지만 앙칼진 목소리는 이내 파도에 묻혀 흩어졌다. 이따금 졸다 늦었는지 철새가 날갯짓을 퍼덕였다. 노을 고운 하늘을 크게 선화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홀로 떠는 아양이 서러웠다. 어쩌면 눈물 몇 방울 남몰래 떨궜을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있었고 계절이 저물고 있었다. 꽃을 피웠지만 거기까지였다. 굳이 거기까지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잔뜩 허리를 굽혀 사진 한 장을 담았을 뿐이다. 가슴에는 이런 말 하나 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너는 꽃을 피워 꽃으로 살았다' 입안에 고인 침처럼 말이 끈적했다. 지는 햇살이 미소로 번졌다. 그 바닷가에 나는 왜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