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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두 눈을 감고 등받이에 기대면 졸음처럼 떠오르는 몇몇의 생각들이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는 사내놈처럼 겸연쩍게 웃었다. 댕기 머리를 나풀대며 마당에서 봉당을 연신 오가던 계집애는 포르르 바람을 일으키며 마루로 올라서더니 모습을 감췄다. 대신 창호지 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까르르 웃었다. 기웃대는 사내놈의 인기척을 애써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다가 이내 엉덩이를 샐쭉대며 걸었고,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내놈은 두 눈 가득 계집애를 담고는 홍당무처럼 얼굴을 붉혔다. 사내놈이 담장에 몸을 숨긴 채 계집애를 따라 허허허 싱겁게 웃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가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있잖아? 우리 처음 만나는 날은 꼭 수요일로 정했으면 좋겠어. 비 많은 장마쯤에 본다 생각하고 있어. 알았지?"

여자는 미소를 지을 뿐 이유를 묻지 않았다.

"널 만나는 날에 비가 왔으면 정말 좋겠다. 아니, 비 오는 수요일에 내가 갈게. 하하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맑은 바람처럼 경쾌했다. 이른 봄날 양지 녘에 내리쬐는 햇살처럼 따뜻하기도 했고, 동네를 가득 메운 아까시 꽃향기처럼 달큼했다. 꽃향기에 취한 벌처럼 붕붕 날갯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난, 빨간 넝쿨장미가 제일 좋더라. 꼭 불꽃으로 타는 꽃 같아"

뻔히 수가 읽히는 남자의 계획은 그래서 비 오는 수요일의 빨간 장미였다. 흐뭇하게 웃는 모습이 투명한 유리병 속의 금붕어 같았다. 뻐끔뻐끔 꽃들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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