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이봄


사랑, 그것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감정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랑이 청춘의 것 만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청춘을 막 벗어난 중년은 어디로 갈 것이며, 아깝게 진입장벽에 막힌 사춘기의 젊음은 또 어디를 방황해야만 할까. 중년의 퇴근길에 터덜터덜 매달리는 그 쓸쓸함은 그저 알코올을 붓는 것 만으로 출구를 삼아야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가뜩이나 들끓어 방황하는 청소년은 여드름만 키울 일이다.

그러니 사랑이란 위대함에 족쇄를 채우면 안 된다. 청춘의 언저리를 맴도는 세대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황혼기의 접어든 삶에도 핑크빛 열정은 사그라드는 게 아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갈고닦는 유아기의 병아리들도 좋고 싫음을 이야기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버둥을 치고 세상이 떠나가라 운다. 나름의 핑크빛 발버둥이다.

특정한 세대와 나이로 진입장벽을 높이 쌓고, 머물 수 있는 자격에 한계를 두어 쉽사리 내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이 꿈꾸고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단지 나이와 육체적 평점으로 빼앗을 수는 없다. 저항하고 끝내 쟁취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나이에 무슨....' 이라던가, '다 늙어서 주책이지 뭐....' 하는 따위의 자포자기의 말에 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애당초 가슴이 메말라 사랑 따위의 감정이 다 소진되고 없다면 말꼬리를 흐릴 이유도 없을뿐더러, 주위의 시선에 이끌린 말로 손사래를 치지도 않았을 거라서 그렇다. 몽글몽글 가슴에 솟는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고, 거세된 수컷의 삶을 선택한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중년의 사랑도 뜨겁다. 여전히 나는 아리따운 여인과 포옹하는 것을 꿈꾸고 그에게서 풍기는 비누향에 가슴이 설렌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며 보드라운 촉감에 야릇하게 심장이 뛴다. 사랑이 청춘의 전유물이라면 콩닥콩닥 뛰는 내 마음은 하릴없는 개구리의 달밤의 체조 같은 허무맹랑한 짓거리에 불과한가. 그렇다면 나는 살아갈 이유 중 절반쯤을 숭덩 잘라내야만 한다.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이 잘라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관점의 문제다. '산에 오를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보았네' 하던 시인의 말이 있다. 허둥지둥 정상만을 보고 오를 땐 꽃이고 뭐고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오직 정상만이 손짓을 하고, 나는 또 홀린 듯 달음박질치게 마련이다. 들끓는 젊음은 그렇다. 뛰고 기어오른다. 경주마의 질주다. 그렇지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걸음은 한결 가볍고 여유롭다. 그제야 들꽃이 보이는 거다. '자세히 보아야만 더 예쁘다'고도했다. 걸음이 느려지고 행동이 굼뜰 때쯤 보이는 것도 그만큼 많다.

청춘의 그것에 뒤처지지도 않는다. 너는 백 미터를 전력질주하고 나는 그만큼을 속보로 걸을 뿐이다. 너는 육체적 행위에 조금 더 집중하고, 나는 감정의 소통에 더 방점을 찍는다. 어느 것에도 일방적 우위를 주지 않겠다. 걸맞게 꿈꾸고 행동하며 사는 게 인생의 답이기도 하고, 사랑의 방법이기도 해서 그렇다. 중년의 사랑도 곱고 예쁘다. 노년의 사랑은 넓고 깊다. 그러니 지레 포기하지도, 우리만의 것이다 으스대지도 말자. 사랑은 그 말만으로도 곱고 향기로운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청춘의 그것에 뒤처지지도 않는다. 하여, 오늘도 나의 심장은 널 향해 뜨겁게 뛴다.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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