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가 행해야 하는 도리다.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으며,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름지기 군자는 오해받을 일을 애초에 하지 않아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도리라는 뜻이다. 내 뜻과는 무관하게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는 시선에는 다른 뜻을 품을 수도 있기에 애매모호한 행동이나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말일 터다.
전철역을 향해 걷고 있는 남자의 얼굴엔 화색이 가득했다. 싱글벙글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방금 전에 남자는 사내 한 명을 만났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내는 봉투 하나를 열어 보이며 수줍게 웃었다.
"내가 귀가 얇아서 뭔 소리를 들으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요. 손이 크기도 해서 한 소쿠리씩 사기는 했는데.... 하하하"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사내가 내민 봉투에는 노란 참외가 몇 개, 오이가 또 그만큼 들어 있었다. 혼자 사는 처지라서 참외며 오이가 너무 많다고 했다. 괜찮다면 참외와 오이를 나누자고 했다. 남자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러워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금방 상하는 게 아니니 냉장고에 두고 드세요!"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사양을 했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 둘이서 권하고 사양하기를 몇 번,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싶었던 남자가 말을 꺼냈다.
"정 그러시면 참외 하나, 오이 하나만 주세요. 맛있게 맛만 보겠습니다. 실은 저도 혼자 몸이라 먹을 입이 없어서요."
짊어졌던 가방을 앞으로 당겨 참외와 오이를 하나씩 집어넣고는 남자는 코가 깨져라 인사를 했다.
"정말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남자나 사내나 몇 번을 고맙다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에서 둘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자와 사내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 어디에 사는지? 이름은 어떻게 되는지? 나이는 또 몇이나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의 이력이 중요하지도 않다. 어떤 과거가 있었고 그가 키우던 황금송아지가 몇 마리나 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두 남자가 참외 하나를 갖고 실 랑이를 벌였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아침저녁 센터를 오가며 마주친 많은 얼굴들 중 하나에 불과한 사이였다. 자주 마주치거나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면을 트고, 통성명을 하며 조금씩 속내를 보여주기도 하겠지만, 고작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가볍게 목례를 하는 몇몇의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 남자도 묻지 않았고 그들도 묻지 않았다. 그저 잠시 거쳐가는 간이역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고,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미루어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깨를 으스대며 거들먹거릴 처지도 아니었고, 수다스럽게 떠들 자랑거리도 없었다. 잠시 잠깐의 스침이 고작이었고 번뜩 드는 궁금함이 전부였다.
그런 사내가 남자에게 내민 참외는 유난히 향긋했다. 샛노란 참외가 달덩이처럼 곱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전철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내내 남자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쏟아지는 햇살도 더는 뜨거운 줄 몰랐다. 불어 가는 바람이 온통 참외의 달큼한 향기로 물들어 있었다. 참외의 향긋한 유혹을 단박에 뿌리칠 군자가 몇이나 될까 궁금했다. 오죽하면 오이밭에선 신을 고쳐 신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을까 싶었다.
이런 유혹이라면 기꺼이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고 싶어졌다. 살다 보면 오해 하나 생기는 것이야 인간미를 느끼는 대목이다 싶어서다. 물이 너무 맑으면 오히려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남자가 너무 맑다는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