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비 내리면

by 이봄


퇴원을 해도 좋다고 합니다.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수술을 위해 절개한 상처를 소독하는 것 말고는 더는 의료행위가 없다고 합니다. 통원치료로 충분한 것들이니 나머지는 시간의 영역에 맡기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그럴 테지요. 답답한 병실이고 병원입니다. 어렵사리 휠체어를 끌고 건물의 1층을 오가는 것도 귀찮은 일입니다. 그러니 반색하며 맞이해야 하는 말인데 나름의 걱정을 앞세워야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는 우울하게 내리고 내 마음은 그것보다도 더 무겁습니다. 입 하나 어떻게 하는 거야 그까짓 거 대충 얼버무리면 된다지만, 발 하나 없는 것처럼 꼼지락 거려야만 하는 건 얘기가 좀 복잡하네요.

"어디로 갈까요?"

뻔한 질문에 질문보다 더 뻔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선택지가 여럿 있는 것처럼 묻게 됩니다. 막상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음에도 그래요. 싱겁죠. 그냥 답답한 마음에 웅얼대는 말들입니다. 마냥 머물러 있을 여인숙도 아니니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야겠지요. 며칠 비워둔 방은 잘 있나 모르겠습니다. 창문이 열려있는지 방에 전등은 다 꺼져 있는지도 갑자기 궁금합니다. 혹여라도 요번 태풍에 빗물이라도 들이치지는 않았는지 궁금한 것은 얼핏 설핏 떠오르는 답답함 때문일 테지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 때문에 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에 휩싸이고, 거기다 몇 푼 모이지도 않은 돈을 탈탈 털어 틀어막아야만 하는 것도 답답합니다. 아니, 짜증이 납니다. 참 거지 같은 일들이구나 하게 됩니다.

구질구질 내리는 비가 지저분하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합니다. 비를 피해야만 하고 우산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해야만 합니다. 지나간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남기고 싶지 않은 흔적이 남고 더듬고 싶지 않은 기억에 자꾸만 손을 뻗게도 됩니다.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물끄러미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좋은 것보다는 현실적인 귀찮음만 잔뜩 떠올라 영 기분이 그렇습니다.

"접합수술도 깔끔하게 잘 됐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 네. 고맙습니다."

고맙다 말을 했습니다. 잘 됐다는데 고맙다 해야지요. 고마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나는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 기다림이란 놈이 가시방석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기다릴 밖에요. 튼튼하게 달라붙기를 염원하며 기다려야지요. 모르지 않습니다. 모르지 않다고 해서 즐겁거나 짜증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짜증 낸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요. 아, 이런.... 말들 하나하나가 다 지저분하게 내리는 빗방울만 같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오늘은 정말 다행이다 싶네요. 옆에서 누군가 쫑알쫑알 잔소리라도 한다면 엄청 짜증을 부릴 오늘입니다. 가슴 가득 그런 말들만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울그락 푸르락 혼자 끓었다 혼자 사그라들 오늘이 차라리 낫다 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혼자라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정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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