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것들이 잔치를 열었다. 손님이 꽤나 많은지 낮이고 밤이고 시끌벅적 제법이다. 미적지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떨어지던 바람이 요 며칠 제법 시원하게 불었다. 아침저녁으로 빼꼼히 내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가 하면 수시로 잘려나간 키 작은 풀들은 줄기가 제법 야물차다. 땅을 움켜쥔 뿌리는 단단하고 여름을 이겨낸 이파리는 빈틈없이 반짝였다. 그뿐인가. 가을을 맞이하는 손길은 제법 맵다. 줄기 끝에 매달린 씨앗은 옹골차게 여물고 있었다. 질경이도, 바랭이도 가을 햇살에 부끄럽지 않을 씨앗을 키워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올망졸망 햇살이 내리고, 햇살 같은 들풀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여물고 있었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느티나무 그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늘이 좋았고 바람이 좋았다. 몇 번의 재난경보문자가 날아들고는 있었지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둡던 나무그림자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부러진 발만 아니었다면 너무도 여유롭고 한가로운 마음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은 그만의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물러나는 계절과 다가서는 계절이 뒤섞인 묘함이랄까. 시간은 그렇게 혼재돼 째깍대고 있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잘려나간 화단의 풀들은 납작 엎드려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바랭이, 닭의 장풀, 질경이, 클로버, 제비꽃....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서 만난 풀들이다. 한 팔을 뻗어 닿는 화단에도 올망졸망 얼굴이 많다. 쇠비름에 괭이밥 거기다 쑥부쟁이까지 온갖 들풀들이 이마를 맞대고 앉아 수다스러웠다. 그래서 초록이 가득한 화단을 들여다보아도 제각각 짙고, 옅고, 깊고, 얕고 잔치상을 한 자리씩 꿰차고 앉은 맛깔난 음식 같았다. 단조롭지 않았다. 싱겁지도 않았다. 짭조름한 그 맛이 좋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매미가 발악하듯 울었다. 우는 매미야 별 생각이 없었겠지만 듣는 내게는 신경질적으로 느껴졌다. 매미는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었고 찾는 암컷들은 종적이 묘연했다. 아니, 저기 어디쯤 나무 뒤에 숨어 훔쳐보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뾰로통 입을 댓 발 내밀고서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날카로웠고 갈라져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시간은 빠듯했고 절망은 저만큼에서 손짓하는 시간이었다. 매미의 여름이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화단 후미진 그늘에서 쓰르락싸르락 가을이 울었다. 짧아진 해와 길어진 달의 그림자를 귀신 같이 알아챈 풀벌레들이 앞다퉈 목청을 높였다. 쓰르락싸르락 귀뚜루, 해 질 무렵이면 베짱이와 귀뚜라미가 합창을 했고 부는 바람은 덩달아 서걱거렸다. 땀방울이 솟고 고추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늘은 깊었고 바람은 말갛게 불었다. 다리가 긴 방앗개비는 짧은 풀밭을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개미 한 마리 여기저기 풀들을 기웃거리며 화단을 탐험하고 있었다. 아, 여기는 괭이밥이 떼 지어 자라고 있구나! 머릿속에 좌표를 그으며 지도 한 장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바빴고 그만큼 절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계절이란 게 묘해서 어느 한 모퉁이를 돌면 천 년 만 년 이어질 것 같았던 여름이 꼬리를 내리고야 만다. 시간은 그만큼 넘쳐나기도 했고, 반대로 그만큼 모자라기도 했다. 종종거려만 했다. 그래서 매미가 신경질적으로 울었고 앞다퉈 풀벌레가 밤을 몰아내며 울었다. 들풀들은 줄기 끝에 잔뜩 씨앗을 이고서 뜨거운 햇살을 품에 품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서로 기대 끌어주고 토닥여줬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만 강제된 한가로움에 하품을 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눈꼬리 끝으로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