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傳說

by 이봄


아주 오래전에는 그랬다고 했다. 혹여나 지금도 가뭄에 콩 나듯 또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리광 부리지 마라 할 수도 있겠다. 마음이 간절하면, 그 마음이 어여쁘면 돌아볼 수도 있겠다 하자. 이 넓고 넓은 세상에,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누구 하나라도 빈자일등의 돌봄이 없을까. 나야 그저 이렇게 투덜대고 네댓 발 입술을 삐죽거리다 말겠지만, 지금도 어느 구석에선 정말 간절함을 더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터라서 가벼이 입방아를 찧기가 그렇다.

전설이 아니었으면 한다. 초라한 등불 하나 천금의 무게로 올렸을 그의 기도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등불이 초라할 뿐 그의 마음이 초라한 것이 아니라면 어쩌다 한 번쯤은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으면 좋겠다.

"사는 게 참 고단하지?"

위로의 말 속삭여 주면 무릎 꿇은 그는 아마도 몇 날 며칠을 펑펑 울지도 모른다. 그의 기도에 따스한 응답이 있었다 감동하여 머리 조아릴 터다. 빈자일등이란 말이 한낱 번지르 한 말의 성찬만은 아니었다 노래를 할 터였다. 그랬으면 좋겠다. 믿음에 믿음으로 화답하는 신성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발에 차이고 밟히는 것들 조차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존재하는 것에 합당한 이유가 있고, 누군가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다. 사소하게는 부주의가 만든 사고라던가, 욕심이 부른 재앙이라던가 하는 따위가 있을 테고, 개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종교적 관점에서의 업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다만, 나는 종교를 믿지는 않는다. 새벽에 잠을 깨고 어두운 방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순간순간 밀려오는 답답함 때문에 말꼬리를 잡고 잡생각에 빠졌다만, 종교에서 얘기하는 달콤한 말이나 사람을 겁박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는 않는다. 세상에 넘쳐나는 수천 년 된 묵은 말들이 생각의 틈바구니를 파고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이왕지사 벌어진 일이라면 그랬으면 한다고 타협을 뿐 내게 종교적 믿음은 없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생각들이 결국은 절대적인 힘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허구의 힘에 기대 또 다른 힘을 기원하게 되겠지만, 결국 나는 허공에 날리는 주먹질 몇 번에다 욕지거리 몇 번이면 그만이다. 누구를 탓하고 어디에 기대 남은 삶을 살까. 그저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 만들어진 오늘일 뿐이다. 실수하고 후회하고를 반복하는 사람이라서 넋두리를 늘어놓게도 되고 괜한 투정을 부리는 거다.

골방에 들어앉아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이렇게 주절주절 떠드는 것 말고는 없다. 눈을 마주칠 사람도 없고 말을 섞을 사람도 없다. 고요하고 조용하다. 창이 훤하면 낮이고 어두우면 밤이다. 가끔 새 한 마리 찾아와 재잘대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침묵은 금이다 고리타분한 말은 내가 선택했을 때 그나마 빛을 발하는 명제다. 어쩔 수 없는 침묵은 금은커녕 구리 쪼가리도 되지 못한다.

아, 그나저나 날개도 없는 추락은 예서 끝이었으면 좋겠다. 창공 높이 비상한 적도 없는데 뭔 놈의 추락은 바닥도 없이 깊기만 한 것인지 모르겠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할 테니 예서 그만하자. 바라는 것도 없다. 아니다. 바라는 게 있기는 하다. 얌전히 없는 듯 살다 바람처럼 떠나는 것, 그 바람이 너무 큰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없는 하루가 일찌감치 열린 오늘이다. 전설 같은 말 하나 떠올려 어지럽게 그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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