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담장을 끼고 무더기로 자란 철쭉나무는 철 모르는 꽃송이 몇 개 피워냈다. 낮게 가라앉은 하늘은 을씨년스러운 낯빛으로 심통을 부렸다. 드문드문 행인이 스쳐갔다. 주말을 맞은 운동장은 텅 비었고 하릴없는 까치 한 마리 빈둥대며 거닐었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한가로운 거리만큼 느릿느릿 길을 걸었다. 하늘 한 모금에 가로수 두어 모금 삼키는 한낮이다.
오랜만이다. 두 달이 꼬박 지나고서야 맞는 산책이었다. 살금살금 걸어보았다. 잔뜩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천천히 조심조심 걸었다. 아직은 무릎에 무리가 가는 탓에 목발 하나는 남겨두었다. 의지하고 기대야만 하는 걸음이었지만 초등학교를 지나쳐 누이동생 집까지 걸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낯설어 부자연스러웠다. 하기는 걷는 걸음조차 뒤뚱거려 낯선 바에야 무엇인들 그렇지 않을까. 오랜만에 두 발로 서서 바라본 것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버석버석 소리 내며 부서질 계절에 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름날의 영광은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이내 퇴색될 터였다. 사람이나 초목이나 한 번 태어나 성장하는 것들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가을은 유독 쓸쓸했고 허무하기도 했다. 인생의 뒤안길이기도 했고 계절의 마지막 모퉁이여서 그럴 터였다. 걷다가 마을 버스정류장에 앉아 한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에 다다를 수 없어 쉬었다. 앉은 김에 하늘 한 모금 더 마셨다. 입안 가득 씁쓸함이 남았다. 애처로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