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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Dec 19. 2023

날마다


누워 빈둥대고 앉아 졸았다. 함께하면 닮는다더니 날마다 어둑어둑 낮달이 뜨고 주인 닮은 방은 등 하나 밝혀야만 겨우겨우 낮이 됐다. 오랜만에 겨울바람이 불었고 덩달아 창문이 덜컹거렸다. 경계 없는 것들만 올망졸망 무릎을 맞대고 앉아 노닥대더니만 모처럼 방울 같은 눈 부라리며 겨울이 왔다. 겨울은 명확했고 휘황했다. 그동안에는 술에 술을 타고 물에 물을 탄 것처럼 모호한 것들만 잔뜩 모여들어 바글거렸었다. 겨울 답지 못한 겨울에 주룩주룩 비가 내렸고 낮 답지 못한 정오가 그림자를 지웠다. 하릴없는 강태공이야 빈 낚싯대로 세월을 낚는다 했다지만 이도저도 아닌 필부야 자다 깨어 다시 졸았다. 흐리멍덩한 날씨마저 엉덩이를 부추겼다. 자면서 꾸던 꿈을 앉아 졸면서 마자 꾸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에 갇혀 한 계절이 졸았다.

"지금 뭐 하고 있었니?"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궁색한 대답을 그럴싸하게 늘어놓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까발려 나를 보여주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내세워 당당한 모습이 아니라면 구태여 내세울 일은 없었다. 아이 옹알이 하듯 말은 꼬리를 감추게 마련이었고, 얼굴은 부끄러워 붉게 물들었다. 궁색한 세월이었다. 이제야 겨우 찾아온 겨울보다 몇 날을 먼저 마음이 얼어붙었다. 몸을 움츠려야만 했고 거적때기라도 한 장 가슴에 둘러야만 했다. 준비 없이 겨울을 맞이한 짐승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는 억지 잠을 청했다.

꿈을 꿨다. 벌 나비가 나풀거렸고 꽃은 피어 산천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당에서 겅중거리던 강아지는 툇마루 끝에 턱을 괴고 잠이 들었다. 바람이 불었다. 꽃바람이 불 때마다 향긋한 꽃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킁킁 바람을 쫓던 사내놈은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뱃고동소리 뿌웅 길을 잡고 사내놈은 통통통 길을 나섰다. 괴나리봇짐에다 미투리 몇 쪽 대롱대롱 매달고서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달렸다. 밤낯을 가리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향기 짙고 짙어 천 리 길은 내내 꽃길이었다. 어느 복사꽃 화사한 마을엔 분명 그대 있을 것만 같아 심장이 뛰었다. 다듬이 방망이 콩닥거리듯 심장이 그렇게 뛰었다. 드리운 낚싯대에 꿈 하나 야물딱지게 걸려 파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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