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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Dec 25. 2023

선물 같은 날


너는 커피잔 앞에 두고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초롱한 눈은 어찌나 반짝이던지 나는 그만 눈을 떼지도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처음 널 보았을 때 나는 그랬다.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발버둥 치지도 못하고 너의 까만 눈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천둥이 울었다. 천둥소리에 놀란 가슴은 터질 듯 뛰었다. 번개가 번쩍였고 심장은 찌르르 감전이라도 된 듯 저렸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널 보았을 때 분명 내게는 천둥이 울었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그것은 순간이었고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너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었고 그만큼 궁금한 것들 투성이었다. 사랑은 사고처럼 온다더니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나는 물길에 휩쓸렸는지도 모른다. 허우적대면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물길이었는지 모른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니 사진 속 너를 바라보았다. 몇 날 며칠을 그랬다. 뭘 하고 있을까? 점심은 뭘 먹었을까? 오늘 기분은 어떨까? 시시콜콜한 것들이 다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는 것 없으니 그저 뜬구름 잡듯 궁금해하는 것 말고는 별도리가 없었다.

"잘 잤나요? 오늘 기분은 어때요?"

안부를 건네고 싶었다. 여기는 눈이 펑펑 내린다고 수다라도 떨고 싶었다.

전전긍긍 애만 태우다가 속내를 털어놓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슨 용기가 그렇게 샘솟았나 모르겠다. 혹시나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긁어모아 문자 하나 겨우 남기고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기다림이 길어지고 끝내 묵묵부답 애태우던 날, '에라 멍청한 놈아!' 몇 번이고 머리를 쥐어박았었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렇게 심장이 뛰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저릿저릿 심장이 뛴다.

그때처럼 풍덩풍덩 눈 내리는 아침이다. 세상 가득 축복을 염원하는 성탄절 아침에 눈이 내린다. 눈밭을 뒹구는 강아지처럼 그 계절에 나는 너의 전화번호 받아 들고서 밤새 눈밭을 뒹굴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잠 한숨 잘 수도 없었다. 선물이었다. 너무 소중해서 포장지조차 뜯을 수도 없는 그런 선물이었다. 새벽 새하얗게 내린 눈밭에

"그대 사랑해!"

고백하게 되는 너는 선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오래된 선물 조심스럽게 풀어헤치다 그만 딸꾹, 딸꾹질을 하게 되는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바스락바스락 선물을 여는 손끝이 떨리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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